한국 생활 2n년 차 외국인의 추억
어린이대공원은 내 외국인 정신세계를 소개하는 첫 번째 장소다. 1년에 안 가본 날이 없을 정도로 지긋지긋하게 방문하는 곳이지만 막상 도착하면 반가운 존재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소꿉친구다. 당연히 그런 일이 없겠지만, 만약 어린이대공원이 사람으로 변하면 큰일 난다. 외국인의 삶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그곳에서 '있잖아! 이것 때문에 정말 힘들어!'부터 시작해서 '그냥 고향 돌아갈까?'의 체념까지 퍼부었다. 내 인생사를 많이 공유한 곳이 어린이대공원인데, 그곳이 사람으로 변하면 부모님도 모르는 내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된다.
난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이대공원에 자주 갔다. 놀이터뿐만 아니라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놀이공원까지 있어서 심심할 때마다 아빠 또는 엄마의 손을 잡고 '나 어린이대공원에 갈래!'라고 외쳤다. 부모님은 시간이 되면 나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으로 갔다. 지금은 누구나 어린이대공원을 방문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입장료가 있었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서 부담 없이 그곳을 자주 놀러 갔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어린이대공원을 자주 방문했다. 그때의 나는 세상에 대해 잘 몰랐다. 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하나의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구별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어린이대공원도 그렇게 보았다. 그곳을 내 세상에 있는 재밌는 큰 공원으로 보았다. 외국인인 내가 한국의 대공원을 놀러 가는 것이 아닌, 이 세상의 인간인 내가 이 세상의 어린이대공원에 놀러 간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인드로 살았을 때 재밌는 추억을 쌓았다. 대표적인 추억은 저녁 방송 음악이다.
어릴 때 작은 집에 살았다. 내가 뛰어놀기엔 공간이 작아서 조금만 난리를 피우면 사고 칠 위험이 크다. 그래서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에 갔다. 어린이대공원은 마당이 없는 집을 대신한 야외 놀이방이었다. 돈의 여유가 생기면 놀이동산에 가서 기차를 탔고 뛰놀고 싶을 때는 들판에 가서 미친 듯이 뛰었다. 비둘기 무리를 보고 "으아앗!'하고 뛰어가기도 하고 놀이터에 가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신나게 탔다. 저녁이 될 때까지 신나게 놀면 집에 가는 시간이 된다. 집에 가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것을 좋아해서 다른 어린이처럼 '집에 가기 싫어!'를 외쳤다. 아빠는 내 태도를 보고 화를 안 내고 어떠한 타이밍을 기다린다. 그 타이밍이 바로 방송 안내가 시작되는 타이밍이다.
딴.딴.딴.딴!
저녁이 되면 스피커에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데, 그 음악의 분위기가 웅장한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에 베토벤의 운명이었다. 사람이 놀랄 때, 혹은 무언가 잘못해서 망할 때 쓰는 그 클래식 음악 맞다. 난 첫 멜로디의 '딴.딴.딴.딴!'이 괴물이 나올 것 같은 효과음처럼 들려서 그 음악이 흐를 때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외쳤다. 그럼 집에 가고 싶었던 아빠가 나를 안고 집으로 향한다. 이것이 바로 나와 어린이대공원의 첫 추억이다. 여기까지는 훈훈한 추억이다. 그 이후는 씁쓸한 추억으로 바뀌게 된다.
모든 것을 구별 없이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런데 교육을 받기 시작한 순간 내가 보이는 모든 것에 구별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를 포함해서 내 눈에 보이는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나와 같은 인간이 맞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단어 속에 구별이 있었다. 난 필리핀 사람,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 난 외국인 그 사람들은 현지인. 내 시점으로 보면 여긴 외국, 내 고향은 비행기 타고 4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언어도 그렇다. 난 한국어와 영어를 쓰고 있었다. 순수하게 의사소통의 목적으로 썼던 언어인데 그 언어 속에서도 구별이 있었다. 내가 쓰는 한국어는 한국의 모국어, 내가 쓰는 영어는 미국의 모국어. 필리핀의 모국어인 필리핀어는 심지어 내가 못하는 언어다.
인간과 언어 속에서 구별이 있음을 배운 나는 이제 문화의 차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한국어가 있고 한국 문화가 있다.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그곳에 필리핀어가 있고 필리핀 문화가 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필리핀에서 태어난 필리핀 사람이고 한국이라는 외국에 살고 있다. 한국이라는 외국은 한국어로 대화를 하며 필리핀 문화와 다른 한국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내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배운 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해졌다. 그때부터 한국을 낯선 세상, 한국 사람들을 낯선 세상의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 내가 외국인이지만 내 시점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내 눈에도 그들이 외국인이고 난 외국에 있기 때문에 '낯설다'는 단어가 적합하다. 그래서 한국은 낯선 세상, 그곳의 현지인들은 낯선 세상의 사람으로 보았다. 어릴 때 세상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면서 나온 결론이다.
'우린 똑같은 인간이지만 다르구나.'
그 후로부터 어린이대공원을 방문했을 때 구별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현지인과 외국인으로 나뉘고 난 외국인에 속한다. 현지인의 언어는 한국어 부모님의 언어는 필리핀어와 영어, 그리고 나는 현지인의 언어인 한국어와 고향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영어를 쓴다. 신기한 건 식물원과 동물에서도 구별이 있었다. 식물원의 경우, 한국 식물과 외국 식물이 있다. 대부분의 동물은 해외에서 온 동물이다. 동물 친구들이 사람이었다면 나와 똑같은 외국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구별하기 시작한 나에게 예상치 못한 자아 충돌이 일어났다. 바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외국인과 현지인의 다름을 너무 인식해서 미지의 두려움이 생겼다. 연필을 들고 숙제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듣게 되었다. 외국인과 현지인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큰 문제 없는 삶이 이어진다. 그런데 외국인과 현지인이 서로의 오해를 풀지 않고 문화 충돌에 집중하면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난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는 걸까.'
내가 만약 사람들 사이에 문화 충돌을 겪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난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불안감을 가졌다. 내가 사는 세상 속의 모든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 후 '외국인의 삶'을 향한 미지의 두려움을 얻었다. 처음에 세상이 하나로 보였다. 그래서 무섭지 않았는데, 내가 속한 세상이 따로 있고 남의 세상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사 서 있는 곳이 남의 세상임을 깨닫자마자 그 세상이 익숙한 세상이 아닌 낯선 세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낯선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자신감이 낮아졌다.
과거의 나는 소속감과 유대감을 중요하게 여겼던 외국인 어린이였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그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었다. 문제는 외국인으로 그 소속감과 유대감을 가지기 힘들다. 그 부분은 나도 이해한다. 나도 친구 사귈 때, 나와 달라서 사귀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사귈 때가 많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사귀려면 머릿속의 이해와 존중의 버튼을 꼭 눌러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무턱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다양한 반응을 받았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외국인을 어려워한다. 더 웃긴 건 고향 사람들도 나를 어려워한다. 같은 나라 사람인데 모국어를 못하고 다른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고향 사람들도 날 어려워한다. 그 태도가 나에게 상처로 남았다.
'내 성장 배경 때문에 어려운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서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된 후 계속 집 안에 있었다. 늘 부모님에게 말했던 '어린이대공원에 갈래!'가 줄어들었고 시간이 더 흘러, 이젠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가면 낯선 세상을 보게 된다. 나는 그게 무서웠다. 나와 다른 사람을 보는 게 무서워졌다. 세상 속의 모든 것을 구별하는 법을 알게 된 이후 어린이대공원에 대한 기억이 변했다. 기억 속에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사람이 아닌 동물과 식물 그리고 재밌는 공간이 많았다. 사람과 함께 있었던 추억이라면 부모님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 것밖에 없었다. 그게 내 어린 시절의 세상이었다. 나, 엄마, 아빠 그리고 내 세상.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린이대공원을 방문하는 횟수가 다시 늘었다. 이유는 내가 가입한 사진 동아리 때문이다. '아, 자신의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반을 선택했나 봐.'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아쉽게 틀렸다. 그냥 친구 따라 사진반 들어갔다. 갈 곳도 없고 내 꿈도 명확하지 않아서 적당히 학교를 탈출할 수 있는 야외활동을 선택했다. 밖에 나갈 수 있고 친한 친구들과 활동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빠가 DSLR 카메라를 소지하고 있어서 카메라 준비도 문제없었다.
내가 부정하는 현실은 당연히 외국인 인생이다. 어린이보다 생각을 깊게 하는 청소년이 되었는데도 내 현실을 제대로 정의하기 힘들었다. 외국, 고향, 외국인, 현지인을 구별을 할 수 있어도 내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지 정의할 수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도 외국인, 고향에서도 외국인 같은 존재다. 마음속에 익숙해진 문화는 완벽하게 한국 문화가 아니며 완벽하게 필리핀 문화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존재이기 때문에 성인이 될 때까지 '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정확히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고민했다.
지금의 나에게 어린이대공원이란, 마음이 편안한 곳이다. 사진을 가지고 표현하자면 이렇다.
어린이대공원은 전반적인 내 인생사를 담고 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 그리고 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구별 없는 삶을 살았을 때 난 어린이대공원이 좋았고, 그곳을 그냥 이 세상의 큰 공원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세상 속의 모든 것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 후 어린이대공원을 낯선 세상의 큰 공원으로 인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