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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클 Jun 04. 2022

아빠가 나를 기억했을 때


“아빠, 내가 누구야?”

“다 까먹었어.”

“내가 아빠 딸이야.”

“.......”

“내가 아빠 딸이잖아. 둘째 딸!”

“너는 내 아는 동생이지.”

“아니야. 나는 아빠 딸이야. 아빠가 내 아빠야.”          


먼저는 자주 보지 않는 친지들을 잊었다. 그리고 본인이 결혼했다는 사실도, 자식이 있다는 사실도 잊었다. 


나는 부모님의 결혼사진과 어린 시절 함께 찍었던 사진을 들이밀며 필사적으로 굴었다. 아버지는 사진을 보면서도 자신은 결코 결혼한 적이 없다며 탁자를 쿵쿵 두드리고 언성을 높였다. 아버지에게 잊히는 게 싫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누구인지 묻고  딸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억은 붙잡아지지가 않았다. 아버지에게 난, 딸이 아닌 그저 얼굴을 많이 본 아는 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딸로 기억해 낸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를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와서 남편과 함께 셋이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남편이 아버지를 위해 특별히 바비큐립을 구웠다. 아버지는 하나 남은 바비큐립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내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남편이 살을 발라주려고 그 고기를 자기 앞으로 가지고 가자, 아버지는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얘 준거예요! 얘가 내 딸이에요!”          


아버지는 내가 하나 남은 바비큐립을 빼앗기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자, 나를 기억해 냈다. 그렇게 내가 딸이라고 말했을 때는 아니라고 자신은 결혼한 적조차 없다고 딱 잡아떼더니, 내게 고기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딸임을 떠올린 것이다. 갑자기 불벼락을 맞고서 머쓱해하는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아버지가 날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날 이렇게 사랑하고 있구나 생각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바비큐립이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서야 아버지는 노기를 거두고 식사를 끝까지 했다. 치매도 자식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은 이기지 못한 것이다. 하하하. 


이틀 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버지와의 식사시간. 


“아버지도 잘 계시지?”

"허허. 또 시작이다. 아빠가 아빠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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