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안되는 일

#그림책 #거기누구있니? #출간후2년반 #편집후기


그림책 <거기 누구 있니?>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한다. 2017년 늦가을, 합정역 인근 까페에서 진행된 저작권사 미팅에서 이 작가(파스칼 무트-보흐)의 다른 작품을 소개받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나쁘지 않았으나 어딘가 좀 아쉬웠다.


작가 프로필을 살펴보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글로일러스트레이션 최우수상 수상 이력이 있어서 그 작품을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책이 바로 <거기 누구 있니?>였다.

책을 보는 순간 '이건 꼭 내고 싶어!'라는 마음이 치솟았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  마리 곰이 서로를 찾아 헤매다 마침내 함께하게 되는 과정이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표현된 작품이었다. 내 눈에는 이 과정이 세상 낭만적이었다.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가 말하는 이라니! 게다가 작품의 의미는 또 어떻고! 이렇게 멋진 책을 발견한 사실이 즐거워서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네덜런드어와 프랑스어가 병기되어 있는데,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해도 사랑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였다.

바이링궈 지역인 벨기에와 달리 한글만을 쓰는 한국에서 이걸 어떻게 번역할지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일단 저작권 계약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당시 회사에서 그림책브랜드를 시작한 지 몇개월 채 되지 않았고 (브랜드의 시작 즈음 입사했으므로 나의 입사 연차도 마찬가지였다) 홍보나 판매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깡그리 무시할 만큼 간이 크지 않았기에 몇날 며칠 천장을 보고 누워서 이 책을 내는 경우와 내지 않을 경우를 점쳐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을 내지 않으면 너무나 후회될 것 같았고, 결국 "우겨서" 이 책을 출간하게 됐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그 결과는?

그림책 브랜드를 3년간 꾸려오면서 내가 만든 책 중유일하게 재쇄를 찍지 못했다.


왜 때문일까.


<거기 누구 있니?> 본문 이미지


한눈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을 사람들은 "어렵다"고 느낀다는 것을, 출간 후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야 알게 됐다.


이 책만이 아니라 텍스트가 적거나 없고 이미지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책을 독자들이 어려워한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용과 메세지가 한눈에 보이는데 어려울리 없지! 라고 생각한 건 그야말로 내 생각이었다.


앞서 언급한 이중 언어(네덜런드어와 프랑스어)를 한국어와 이누이트어로 번역했는데 - 갈색곰은 한국에 사는 곰, 하얀곰은 북극에 사는 곳으로 설정하자는 번역가 선생님의 멋진 기획 덕분이었다 - 사람들에게는 도형처럼 생긴 이누이트어도, 이중 언어 번역도 낯설었던 것이다! (모르면 찾아보고 싶어질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지 않았고, 홍보 기술도 지금보다 부족했던 것도 요인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대단한 홍보력 같은 건 없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이었다.

처음 외주 북트레일러를 만들었고, 굿즈로 부채를 만들었고, 활동지로 가운데를 잘라서 쓰는 편지지를 만들만큼 마케터, 디자이너를 다그치며 열정을 다했으나 잔뜩 힘을 쓴 것에 비해 반응은 오지 않았다.


<거기 누구 있네?> 북트레일러


그럼에도, 여전히 이 책을 꺼내 볼 때면 처음 만났을 때의 두근거림과 좋아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만든 시간들이 떠올라 미소를 짓게 된다. 결과는 장담할 수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으로 달려가는 것, 그것이 책 만드는 마음이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되돌려 다시 2017년에 이 책을 만난다고 해도 나는 이 책의 한국어판을 만들고 싶다.

조금 더 힘을 빼고, 조금 더 느긋하게 만들고 알리고 싶지만 그럴 여유도, 여력도 없어서 아등바등하게 된다고 해도 이 책을 놓치고 싶지 않다. 주인공들만이 아니라 주변 동물들 또한 서서히 바뀌어가는 이 물렁물렁하고 낭만적인 세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오늘도 나는 좋아하는 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질 때는  많이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손에 넣을 순 없지만 맥없이 물러서지 않을 정도의 은 가질 수 있으니까.



2020.9.15


작가의 이전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