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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츄츄 Apr 25. 2024

그가 나한테 사랑한다고 했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내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깨닫고 보면 어느새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상황이 안 좋아질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군.’
게다가 나는 최악의 상황이 더 빨리, 차리리 일찍 감치, 그리고 가능하다면 곧바로 일어나기를 바라다시피 해. 그러면 적어도 그 일에 대해 불안해할 필요는 더 이상 없으니까.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中



그가 뜬금없이 말했다. 오늘 12시 28분에 자기한테 사랑이 찾아온 걸 느꼈다고.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가 더 길게 표현해 주기를 기다렸다.

그날은 완벽히 봄이 찾아들어온 날이었고 우리는 늦잠을 자고 하루종일 뒹굴거리다 가볍게 입고 공원을 산책했다. 혼자서는 30분이면 걷는 그 산책코스를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뽀뽀를 해대며 1시간 30분을 넘도록 느릿느릿 여유롭게 누렸다.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자는 나의 제안에 그가 알겠다고 하고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그가 작은 수족관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구경 가고 싶다고 말했다. 수족관에 들어서서 그는 주인에게 구경 좀 할게요!라고 싹싹하게 인사하고는 작은 물고기들을 들여다보며 재밌어했다. 이제는 나에게 자연스레 스며든 그의 사랑스러운 점을 그때 발견했다. 호기심 많은 눈과 몰두할 때 진정성. 내 눈에 물고기를 관찰하며 신나 하는 그는 아이처럼 귀여웠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수족관을 나와 떡볶이 집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었다. 걸어서 5분이 채 안 되는 그 길 위에서 그가 나를 향한 사랑을 느꼈다. 나는 한걸음 내딜때마다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봤고 눈을 마주치면 씨익 웃었다. 햇빛이 좋은 날이었으니 그가 첫 만남에 감탄한 내 갈색 눈동자가 강조되어 보였을 거라고 예상해본다.


생각만 해도 애틋한 데이트고 두 번째 만남에 그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서 조금은 놀랐지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나중에 결국 내가 걱정하던 일, 그러니까 우리가 멀어지거나 아무리 해도 간극을 좁힐 수 없을 일이 벌어졌을 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순간을 꼽을 수 있다면 이 순간을 기점으로 삼아야지 생각했다. 나를 향한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우리가 이보다 좋아질 수는 없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 같다. 극도의 행복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찾아온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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