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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민 바리스타 Jan 26. 2022

4-2 정사장의 이야기

4-2 정사장의 이야기


“여보~ 희수 데리고 올께요.”

“응. 조심히 다녀와요.”

사모님으로 보이는 분이 정사장에게 말을 건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아~ 방금 나간 이가 제 집사람이에요. 저 만나서 고생을 많이 했죠. 어린 나이에. 희수는 늦둥이 딸이고요. 어제부터 학원에서 캠프가 있어서 지금 올 시간이 되었나 봐요. 그래도 늦둥이는 사랑도 많이 주고, 관심도 주면서 키우고 있죠. 둘째는 여기 오고 나서 2년 뒤에 낳은 아이라서 시간적인 여유도 있었고.. 첫째는 정말 얼굴 한 번 못 보고 키운거 같아요. 그때는 정말 눈만 뜨면 뭐에 홀린 것처럼 일만 했으니까요.      

저희 집이 사정이 넉넉지 않았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이 힘들어졌죠.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군대를 바로 다녀왔어요. 군대 전역 후에 저희 집사람이랑 동거를 시작 했는데 아이가 생겨 버린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장사에 뛰어 들어갔어요. 안 해본 일이 없었죠. 처음에는 지하에 있는 호프집이었어요. 밤에는 호프집에서 장사를 하고, 낮에는 막노동판에 가서 일을 하면서 살다보니까 돈이 조금 모이더라고요. 그걸로 또 다른 가게를 얻어서 장사를 했죠. 그렇게 정말 일만 하고 산 것 같아요. 그렇게 하다 보니 2개였던 가게가 15년 만에 20개가 되어 있더라고요.”     

“와~ 가게를 20개나 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신거 같아요.”

“하하하. 서사장님도 매일 일만 하면서 살면 그렇게 되실 수 있을꺼에요.”

“저는 매일 일을 해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꺼 같아요. 뭔가 다른 방법이 있으셨죠?”     

지혁의 질문에 정사장은 웃으면서 솔잎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하긴. 같이 장사를 시작한 친구들 중에서는 그래도 제가 가장 많이 벌긴 했네요. 그 친구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긴 했죠.”     

정사장의 말에 지혁은 눈을 빛냈다.     

“바로 원하는 것을 명함 뒷면에 써서 늘 지갑에 가지고 다닌 것이였어요. 그리고 매일 원하는 것을 중얼거렸죠. 자나깨나 다음 가게를 생각한거 같아요. 틈만 나면 지갑을 열어서 그 종이를 봤죠. 그때는 정말 간절했거든요. 하하하. 조금 어이 없죠?”

정사장의 물음에 지혁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사장님. 정말 정확한 비법을 안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도 여기 오기 전까지 강쌤께 상상의 힘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거든요.”

“그래요? 다들 이 말을 하면 믿지를 않더라고요.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 말고 다른 비법을 알려달라고 말하더라고요. 지혁 사장님 같은 경우에는 좋은 멘토를 두셨네요. 저는 멘토가 없었죠.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지나서 어느덧 가게가 20개가 되었을 때였어요.     

그쯤 고향 후배 녀석 한 명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재미있는 말을 하는 거에요. 산을 산 다음 깍아서 팔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였죠. 임야 투자라고 하는데, 후배 녀석은 그걸로 돈을 꽤 벌었더라고요. 이번에 개발을 하는 물건이 커서 투자 좀 하라고 하더라고요. 언제까지 이렇게 일 만하고 살꺼냐고, 이제 골프도 좀 치고 투자도 해서 이런 푼돈 말고 돈 좀 벌어보자고 하는거에요. 재미있는 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후배 말을 듣고 나니까 갑자기 내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정사장의 말을 듣고 지혁은 방금 전 갤러리에서 강쌤이 알려준 리프레밍에 대한 생각이 났다. 20개의 가게를 가진 것은 상황이고, 그것에 대한 관점은 프레임이었다. 정사장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보니까 정말 돈이 꽤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2억 정도를 투자형식으로 빌려줬죠. 그런데 이 2억이 2년 만에 5억이 돼서 돌아온거에요. 눈이 홱 돌아가더라고요. 장사해서 5억을 벌려면 뼈 빠지게 일해야 되는데 이건 뭐 2년 만에 남들이 10년 일해야 될 돈을 번 거잖아요. 그래서 그 다음 껀에는 저도 공동 지분을 가지고 투자를 하게 되었죠. 처음에 번 돈 5억에다가 가게 몇 개는 권리금 받고 넘기고, 대출도 받고,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가 20억을 만들었죠. 20억 넣고 대박 나면 못해도 5배는 가져가니까 100억이잖아요. 장사로 언제 100억을 벌겠어요.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동안의 열정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거에요. 출근하기도 귀찮고, 가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다 의미 없게 느껴지는거였죠. 예전에는 그렇게 출근하는 것 자체가 기다려지고 즐거웠는데 말이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해요. 그쵸?     

그렇게 투자한 지 9개월 정도 되었나? 개발하던 산에서 문화재가 무더기로 나온거에요. 문화재가 나오면 모든 개발이 중지 된다는걸 듣기는 했는데 그게 우리 산에서 나올 줄 알았나요. 하던 모든 공사가 중지되었는데 이게 언제 다시 시작할지도 모르고 그냥 기다리라는 말뿐이었어요.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공사는 중지되었고, 그때까지 공사한 비용들은 또 우리가 줘야 되고.. 대출금에 이자에 정말 돈이 물 세듯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라고요. 거진 20년 동안 번 돈이 날라 가는데는 1년도 안 걸리더라고요. 그나마 가게가 있어서 대출금 이자 갚을 수 있었죠. 그때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화가 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첫째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딱 제가 군대에서 간 나이인 20살 청년이 제 눈 앞에 있는거에요. 늘 첫째 아들 녀석은 아빠가 나한테 뭐가 있냐고 말하곤 했는데, 그때서야 그 말이 들리기 시작한 거죠. 너무 늦게.. 말이죠.     

퍼득 정신이 드는거에요. 뭐를 위해서 이렇게 악착같이 산 걸까? 돈 버느라 아이가 어떻게 컸는지 보지도 못하고.. 20년이 정말 한 순간에 지나가버린거에요. 그래서 그 날부로 1년 동안 남은 가게들 정리해서 대출 받은거랑 빌린 돈들 정리하고 여기로 내려온거죠.”     

적당히 식어있는 솔잎차를 마시며 정사장은 담담히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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