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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Oct 22. 2023

그럼에도 초등교사

누칼협과 꼬이직 사이에서

2023년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직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선생님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누가 봐도 악성 민원이다. 한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악성 민원으로 힘들어했던 주변 선생님들 얼굴이 떠올랐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더 이상 동료를 잃을 수는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아동복지법 중 정서적 아동학대 금지조항이다. 정서적 학대란 아동에게 언어적 모욕, 정서적 위협, 감금이나 억제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언어폭력,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차별하는 행위, 협박하는 행위 등이 있다. 문제는 정서적 학대의 기준이 교사의 언행으로 아동이 수치심이나 공포심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 여부라는 거다. 굉장히 주관적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정서적 학대를 '기분상해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기분이 상하면 정서적 학대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교사는 학생을 교육하는 사람이다. 학생이 공부하기 싫을 때도 공부를 시켜야 하고 학생이 친구와 다퉈 폭력을 휘두르려 할 때에도 이를 제지해야 한다. 학교라는 공공장소에 맞는 공공질서를 가르쳐야 하고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 번도 학생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현행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가 아동학대 범죄자가 될 수 있다. 


스스로 떳떳하게 행동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학생이나 학부모의 심기를 거스르면 아동학대로 신고를 하겠다는 협박성 민원을 받아야 하고,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하면 죄의 여부와 상관없이 직위해제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몇 개월에 걸쳐 조사를 받는 지난한 과정은 한 교사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교사에게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교사가 정당한 생활지도를 할 수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도 돌아간다. 교권이 추락한 교실은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교사들이 주말마다 서울에 모이고 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들을 추모하고, 더 이상 헛된 죽음을 막고 교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덕분에 많은 분들이 학교의 현실에 관심을 보이고 아동복지법 개정에 지지의 뜻을 표현해 주셔서 감사하다. 그런데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읽다 보면 힘 빠지게 하는 글도 많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는 '누칼협'과 '꼬이직'이다. 누칼협은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이 경우에는 '누가 교사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는 뜻이다. 교사가 된 것은 본인의 선택이니 이런 상황도 알아서 감당하라는 의미로 쓰는 것 같다. '꼬이직'은 '꼬우면 이직하던가'라는 뜻이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교사가 된 것은 다른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선택인 게 맞다. 힘들면 그만 두면 된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나 또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신 선생님들의 소식을 들을 때면 너무 안타까워서 '차라리 그만두고 다른 삶을 사시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만둔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 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채워질 거고,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악성민원이 들어오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학교가 매일 어둡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거다. 소위 금쪽이로 불리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여전히 꿈을 꾸고 희망을 노래를 한다. 교실에서 발견한 밝은 빛을 모아 글로 엮어봤다. 이 글이 희망이 되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는 학교, 선생님들이 안전하게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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