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쳤다. 창밖이 번쩍거리고 하늘이 우르릉 쾅쾅 울려댈 때마다 아이들도 같이 부르르 떨었다.
"토르가 나타났다!"
"이러다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놀란 병아리 가슴들을 안심시키다 보니 어느새 쉬는 시간.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데 서준이가 비에 젖은 생쥐 꼴로 나타나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 비 맞고 왔어요."
머리부터 양말까지 다 젖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오는데, 샤워라도 하고 온 것처럼 개운해 보이는 아이의 얼굴 앞에 한숨을 쉴 수는 없었다. 수건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서준이가 울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웃었잖아? 왜 울어?)
"그런데 준우가 저한테 정신 나갔냐고 했어요. 왜 비를 맞냐면서.. 저는.. 엉엉 그냥.. 엉엉 비를 맞고 싶었을 뿐인데.. 정신이 나갔냐고.. 엉엉엉엉"
서준이의 눈물은 너무 갑작스러웠고 너무 펑펑 쏟아졌다는 점에서 어제의 날씨와 많이 닮아 있었다. 언제 이 친구에게 천둥번개가 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문제의 주인공 준우가 나타났다.
"준우야~ 서준이한테 정신 나갔냐고 했어?"
준우는 어른 같은 말투로 서준이에게 해명을 했다.
"야! 니가 비를 맞고 돌아다니다 감기에 걸리면 내가 속이 상하겠어 안 상하겠어? 속상해서 한 말을 가지고 울고 그러냐?"
어디서 배운 말툰지 몰라도 하얗고 동그란 호빵같이 생긴 준우와는 너무 안 어울리는 말투라 웃음이 났다. 하지만 진지하게 싸우고 있는 두 남자 앞에서 눈치 없게 웃을 수는 없었다. 나는 얼른 두 입술을 입안으로 밀어 넣고 이로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삐져나올 길을 차단한 것이다.
서준이는 준우의 말투가 하나도 웃기지 않았던 것 같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심한 말을 하냐며 따져 물었다. 준우가 다시 호빵 얼굴에 안 어울리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과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야!! 난 너가 1학년 때 나 놀렸던 거 아직도 화 안 풀렸다. 그래도 3년이나 참고 있는 거야!! 그거 알아??"
얼른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귀여운 얼굴에 진지한 표정,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발언 내용, 그리고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를 3년이라고 잘못 계산한 것 등등 어느 하나 안 웃긴 게 없었다. 이 싸움을 더 보고 있다가는 눈치 없이 웃음이 터질 게 뻔했다. 얼른 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얘들아~ 지금은 둘 다 너무 속이 상해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이럴 때는 잠시 마음이 괜찮아질 시간을 갖는 게 좋아. 지금 잠깐 떨어져 있다가 2교시 끝나고 다시 얘기해 보는 게 어떨까?"
다행히 두 사나이는 내 말에 동의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2교시가 끝난 뒤, 서준이와 준우는 어깨동무를 하고 나에게 달려왔다.
"선생님~ 저희 화해했어요! 운동장 가서 놀고 올게요~"
그 사이에 화해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화해한 건지 궁금했지만, 쉬는 시간을 고작 다툼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은 두 아이의 진심이 느껴져서 묻지 않기로 했다. 멀어져 가는 두 친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개어있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눈앞에 보이는 메모지에 끄적였다.
3학년은 싸워도 귀엽다. 그래도 애들이 그만 싸우면 좋겠다. 웃음을 참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아이들 이야기를 글로 쓸 때는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안 쓰려고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써 버렸어요.
(앞으로 자주 쓰게 될 것 같아요.)
아이들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조금 더 완벽한 보호를 위해 정확한 대사나 상황, 성별 등도 그때그때 조금씩 바꿔가며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