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 담임만 연속으로 하다3학년 담임을 하니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다. 5학년 아이들은 모든 음악 시간을 감상 시간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노래를 부르자고 해도 고개만 푹 숙이고 있고, 리코더를 불자고 해도 입에 대고만 있는 아이들이 많다. 사춘기가 코 앞이니 이해해 주려 노력하지만 열심히 준비한 수업에 반응이 없으면 힘이 빠진다.목소리 없는 반주만 교실을 메운다.
3학년 담임이 된 뒤 첫 음악시간,
"살랑살랑살랑 살랑살랑살랑 가을바람 살랑 불어옵니다."
하는 노랫소리가 24개의 목소리로 어우러지는 걸 듣고 가슴이 벅차서 터질 뻔했다.
나는 유독 어린이들의 노랫소리에 약하다. 맑고 투명하고 천진한 표정, 빠진 앞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뭉개지는 발음, 작고 여린 몸통에 힘을 주어 내는 밝고 청량하고 우렁찬 목소리. 그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언제 들어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아이들도 나도 즐거웠던 음악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율이가 나한테 쪼르르 달려왔다.
"선생님, 저는 음악 시간이 좋아졌어요. 왜 좋아졌냐면요, 1학기 선생님이 제가 노래 부르는 걸 들으시고는 너는 노래를 잘하니 가수가 되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그 뒤로 저는 음악 시간이 좋아요."
오랜만에 들어보는 순수하고 투명한 자랑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하율이는 분명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등등 어른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해 둔 그 칭찬을 조심스레 꺼내어 펼쳐 보였을 것이다. 그런 자랑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으니 말이다. 자랑을 하지 않을 때에도 하율이는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마음속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칭찬이 있으니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행복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질서 없이 흐트러져 각자의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하나, 둘, 셋, 넷,... 스물네 명. 하루에 한 명만 칭찬해도 한 달 남짓한 시간에 스물네 명 모두에게 꿈을 심어줄 수 있다. 길을 걷다 내가 한 말이 떠올라 배시시 웃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에게 나는 선생님께 이런 칭찬까지 들어봤다고 자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내가 가진 이 엄청난 능력을 새삼스레 깨닫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한쪽 어깨에는 사명감이, 반대쪽에는 책임감이 올라앉은 것 같았다.
며칠 뒤, 친애하고 친한 베스트셀러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작가님은 브런치 글을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에게 무려 '에세이를 잘 쓴다.'는 칭찬을 해 주셨다. 심장이 10살 하율이처럼 콩닥콩닥 뛰었다. 이 카톡을 캡처해서 모니터 앞에 붙여놓으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은 어린이만 춤추게 하는 게 아니라 어른도 설레게 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내가 키보드 앞에만 앉아도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소중한 칭찬을 자랑하려는 거였다. 자, 일단 다짜고짜 캡처화면을 공개하겠다.
자랑하고 나니 어쩐지 조금 쑥스럽다. 하율이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어른이 된 후로는 칭찬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인사치레겠지.', '나한테 뭐 미안한 거 있나?', '무슨 부탁을 하려고 저러는 걸까?' 같은 온갖 합리적 의심으로 나를 꽁꽁 싸매고 칭찬방어전에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오랜만에 칭찬을 들었더니 기분이 너무 좋아 몸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 인사치레면 어떻고 부탁이 목적이면 뭐 어떤가. 기분 좋으면 그만이지. 칭찬하는 문화가 유행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