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기특한 녀석들
점심을 먹고 교무실에 잠시 들렀다. 선생님들과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자아이 두 명이 교무실 문을 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 빨개진 볼, 헐떡이는 숨,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짧은 순간에 나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상상했다. 누가 싸웠나? 아님 다쳤나? 제발 별 일 아니기를..
아이들은 일단 나에게 빨리 따라오라며 후관 건물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아이들을 따라 달렸다. 아이들은 달리면서 상황을 브리핑했다.
"새끼 고양이가 혼자 있어요. 우리가 도와줘야 해요."
잠깐!!!
고작 혼자 있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이렇게 뛴 거라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다행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엄마 고양이가 금방 오겠지. 뭘 그런 일로 선생님을 불렀어?"
"아니 그게 아니라 진짜 우리가 도와줘야 된다니까요."
아이들을 따라간 곳에는 쥐처럼 생긴 작은 생명체와 그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있었다.
"저건 고양이가 아니잖아."
"고양이 맞아요."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 고양이였다. 살면서 그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이었다. 순간 출산의 기억이 떠올랐다. 눈앞의 고양이는 분만실에서 처음 만난 우리 딸을 닮아 있었다.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떴고 스스로 다리에 힘을 주고 설 능력도 없어 보였다. 그런 녀석이 교문과 주차장을 잇는 길에 덩그러니 웅크려있었다. 아이들이 왜 도와줘야 한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저렇게 갓난 냥이를 두고 어미는 어디에 갔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구세주처럼 바라봤다. 난감했다. 나는 원래 겁이 많고 동물을 무서워해서 동물을 만져본 경험이 거의 없는 데다가 눈앞의 고양이는 너무 작고 연약해서 어딜 안아 올려야 할지 감도 안 왔다.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데 옆에서 한 마디씩 보태는 아이들 때문에 더 정신이 없었다. 일단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얘들아, 5교시 시작할 시간이야. 일단 교실에 가서 기다리면 선생님이 해결하고 갈게."
"지금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들은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때 진짜 구세주가 나타났다. 한 아이가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새끼 고양이를 살려야 한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한걸음에 달려오셔서 고양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셨다. 다행이었다.
아이들을 교실에 데리고 가면서 계속 귓가에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 맴돌았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참 기특한 녀석이다. 아까는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고양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은 행여나 고양이가 다칠세라 고양이에게서 서너 발자국쯤 떨어져 있었다. 호기심에라도 고양이를 만져보려고 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으려는 아이가 있었지만 그 마저도 주변 아이들이 말렸다. 사진이나 찍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교실에서는 맨날 까불기나 하고 아직 서툴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었는데 작은 생명 앞에서는 나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그래,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어른인데도 자주 아이들한테 배운다. 아이들이 알려준 인생의 교훈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우리 반 고양이 스물다섯 명도 내가 잘 보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