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매일 들을 수 있으니까
한 학기 동안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오늘 복직했다. 오늘부터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3학년 2반 담임. 1학기 동안 우리 반을 맡아주신 선생님께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전해 들었기에 얼마나 귀여울까 궁금해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다.
모든 첫 만남은 긴장된다. 아이들과 나도 서로 반갑게 인사는 했지만 그래도 첫 만남은 첫 만남이었다. 아이들은 척추까지 긴장했는지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아서 한동안 나를 가만히 살폈다. 나도 아침 활동 시간에 해야 할 일들을 칠판에 적어주고 내 할 일을 하는 척하면서 모든 신경을 총동원해 아이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아이들이 긴장의 끈을 살짝 늦추고 어서 나에게 귀여움을 마음껏 뽐내보기를 바라면서.
간단히 개학식을 진행하고 방학 과제를 확인했다. 서로 방학을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릴 때에는 친구들과 떠들지 말고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하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40분 동안 말 한마디 안 하고 그림만 그리는 아이는 없다. 처음에는 "노란색 색연필 좀 빌려줘."같은 꼭 필요한 말로 대화의 물꼬를 터서 나중에는 어제 먹은 라면이 얼마나 매웠는지까지 재잘대는 게 아이들이다.
나는 얼른 인간 데시벨측정기가 된다. 한 모둠에서 기준치 이상의 소음이 들린다. 조용히 하라고 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대화의 흐름이 꽤 귀엽다. 그래서 아이들의 수다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엿들었다.
"야, 아끼다 똥 된다."
"아끼다 똥 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아끼다 똥 된다'가 '아끼다 똥 된다'지 뭐긴 뭐야."
"그러면 내가 아끼는 모든 물건이 똥이 돼? 그럼 언제 그게 똥으로 나와? 죽을 때 나오나?"
"으악! 죽을 때 아끼던 게 모두 똥으로 나오면 너무 웃기겠다!"
아이들은 깔깔 대며 웃었지만 속으로는 각자 자기가 죽기 전에 무엇이 똥으로 나올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별 거 아닌 일에도 크게 웃는다. 그리고 큰 일도 웃어넘기곤 한다. 그런 게 바로 아이들만의 순수한 매력인 것 같다. 오늘 나는 '아끼다 똥 된다'이야기에 한참을 웃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점심시간, 급식실에서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었던 6학년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밥을 먹다 말고 큰 소리로 "쌔에에에엠!!"하고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들고 하트를 그려 보였다. 그 모습을 본 3학년 아이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내 옆에서 밥을 먹던 여자 아이 둘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인기가 엄청 많으시네요? 그런데 선생님 몇 살이세요? 스물넷? 스물다섯?"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사실은 삼십 대 후반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나이는 비밀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더 캐묻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 목소리가 너무 예쁘세요."
스물넷, 스물다섯에서 이미 날아갈 듯 기뻤는데 목소리가 예쁘다는 칭찬까지 들으니 절로 기분이 좋았다.
개학날이라 점심 먹고 바로 하교 지도를 했다.
"오늘 하루 어땠어요?"
"즐거웠어요.", "선생님 너무 좋아요."
짜식들, 하루 만에 내 매력에 빠져버리다니. 이어지는 칭찬 세례에 자신감이 충만해져 무리수를 둬 봤다.
"얘들아~ 근데 선생님 뉴진스 닮은 것 같지 않니?"
"맞아요! 뉴진스 하니 닮았어요!"
응? 내가 예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에에~' 하며 야유를 보내며 아무리 그래도 뉴진스는 안 닮았다는 솔직한 답변을 기대했는데 특정 멤버를 콕 집어 그 사람을 닮았다고 해 주니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웃음이 계속 나왔다. 미술 시간에 했던 다짐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얘들아, 내가 너네 더 많이 웃을 수 있게 해 줄게. 너네도 오늘처럼 선생님 자주 웃게 해 줘.'
사실 요즘 교권 추락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이 보도되면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이런 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교권은커녕 인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날이 갈수록 선생님들의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고 '교직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운이 좋아 아직 큰 일을 겪지는 않았지만 험한 꼴 당하기 전에 퇴직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덕분에 선생님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경쾌하고 무해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