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담임이라도 저학년 담임과 고학년 담임은 느낌이 정말 다르다. 1학년은 아직 유치원생 티를 벗지 못했고 6학년은 벌써 중학생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학년마다 장단점이 있는데, 저학년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하고 손이 많이 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귀엽다는 장점이 모든 걸 다 이긴다. 저학년은 귀엽다. 미치도록 귀엽다. 귀엽다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해도 아쉬울 만큼 귀엽다.
저학년이 귀여운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1학년 담임일 때는 쉬는 시간마다 책상에 아이들이 준 선물이 쌓였다. 선물은 대개 색종이로 만들어졌는데, 공주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그려놓고 그 아래에 '김채원 선생님'이라고 써 놓는다거나 하트로 도배한 종이에 '선생님 사랑해요'를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로 적어서 주는 식이었다. 살면서 그때만큼 많은 사랑 고백을 받아볼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그리고 색칠하고 오렸을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 사랑스러워서 내 온몸에 하트 모양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한다. 아직 손 힘이 부족해서 삐뚤빼뚤한 글씨체와 소리 내어 읽어야 겨우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는 엉망진창인 맞춤법은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포인트다. 한 번은 '생선님 사랑해요.'라는 편지를 받고 크게 웃은 적도 있다. 선생님이면 어떻고 생선님이면 또 어떤가, 사랑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고학년은 더 이상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도 선생님을 향한 마음을 표현한다. 고학년의 사랑은 스마트폰 속에 있다. 카카오톡으로 하트 이모티콘을 보내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나와 찍은 사진을 올리며 나를 태그 한다. 내가 올린 게시물에도 하트를 꾹 눌러준다. 저학년은 선생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선생님에게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면 고학년은 선생님과 친하다는 걸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사랑의 방식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 모든 게 사랑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난주의 어느 날 아침에는 중학생이 된 3년 전 제자에게 인스타그램 DM이 왔다.
"선생님 중간고사 열심히 보고 오겠습니다"
라는 짧은 메시지였다. 공부에는 크게 관심 없고 까불까불 거리던 녀석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어 인기가 많아 전교 회장까지 했던 아이였다. 그 친구가 시험 날 아침에 나를 떠올려줬다는 게 고마워서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때때로 사랑은 사랑이라는 말 없이 전달되기도 한다.
지금은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느낄 때는 금요일 하교 시간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자마자 집에 갈 시간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나와 비슷한데, 막상 집에 갈 시간이 되면, 특히나 그게 금요일이면 잠깐의 이별을 너무나도 아쉬워한다는 점에서 나와 또 비슷하다. 금요일 하교 시간이 되면 가방을 메고 교실 문을 나섰다가도 다시 교실에 들어와 몽글몽글한 눈빛으로 인사를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아이들이 있다. 감정이 많이 복받칠 때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인사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주말 동안 건강하세요. 그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세요. 월요일에 만나요. 안녕히 계세요. 사랑합니다."
뭐 방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주말 이틀 못 보는 건데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장황하게 인사를 이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귀엽고 웃음이 나서 입술을 꽉 깨물게 된다. 그때 참았던 웃음은 주말에 그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불쑥불쑥 새어 나온다. 아이들 덕분에 자주 웃는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보면 볼수록 사랑 그 자체다. 사랑둥이라는 말로는 부족해서 사랑덩어리라고 말하고 싶다. 어릴 때에는 몸 안에 사랑을 만드는 기관이 따로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작은 몸에 담아두기에는 너무 많은 사랑이 만들어져서 가족들에게도 나눠주고 친구들에게도 나눠주다가 내 차례까지 오는 것 같다. 온 세상이 아이들의 사랑으로 가득 차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