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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Oct 19. 2023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보는 연습

밥 먹는 시간은 편했으면 좋겠으니까.

초등교사는 8시 30분에 출근, 4시 30분에 퇴근한다. 근무시간이 짧은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교사는 점심시간에도 밥을 먹으면서 급식지도를 해야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선생님들께서 급식을 남김없이 다 먹도록 지도하셨기에 나에게 '급식 지도'란 '편식 지도'와 같은 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급식 다 먹기를 강요했다. 아이들이 왜 급식을 다 먹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말도 늘 준비되어 있었다. 성장기 어린이들은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고 적정량 먹어야 하는데,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은 질과 양에서 그 두 가지를 충족시킨다는 점, 음식을 남기면 쓰레기가 되어 환경이 오염된다는 점을 들어 급식을 다 먹으라고 했다. 물론, 몸이 좋지 않거나 조금만 먹고 싶은 날에는 배식을 받을 때 미리 "조금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연습도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꼼꼼하기로 소문난 선배 선생님과 대화할 일이 생겼다. 선생님은 얼마 전 예전 학부모와 통화를 했다고 하셨다. 학부모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고 했다. 선생님은 옛 제자의 소식이 반가우셨던지 제자와의 추억을 회상하셨다. 버섯을 싫어하는 학생이었는데 선생님 반이었을 때는 한 번도 버섯을 남긴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오랜만에 통화한 어머니께 요즘에는 버섯을 먹냐고 물어봤는데 아이는 그 반을 떠난 후로 다시는 버섯을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단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까지 버섯을 먹게 만든 자신의 능력을 꽤나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다시는 급식을 남김없이 먹으라고 하지 않는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건 평생 갈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는 것이었지, 선생님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먹다가 그 반을 떠남과 동시에 다시는 그 음식을 쳐다도 보지 않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급식 지도의 포커스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아이들의 취향과 식성을 존중해 주기로 한 대신 식사 예절에 집중했다. 입에 음식이 있는 채로 이야기하지 말 것,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장소이니 조용히 밥을 먹을 것, 밥을 먹다가 음식으로 장난치지 말 것, 다 먹은 식판을 들고 잔반통에 갈 때에는 뛰어가지 말고 걸어서 갈 것. 하다 보니 하지 말라는 잔소리만 지겹도록 하는 사람이 되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쩌겠나, 그게 내가 할 일인 것을. 


언제든 잔소리를 할 준비를 단단히 한 채로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을 살피다 보면 아이들 밥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눈을 못 뗄 때가 있다. 아이들 입맛에 맞춘 순한 김치찌개를 먹으면서도 연신 물을 마셔대며 '씁-하-'를 반복하는 모습이라던가, 집에서라면 손도 안 댈 것 같은 파프리카를 다섯 개나 연속으로 먹으며 자기가 얼마나 채소를 잘 먹는지 자랑하는 모습이라던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젓가락을 쥐고 옆 친구에게 생선 가시 바르는 노하우나 꽃게살 바르는 노하우를 전수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너무 가소롭고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찜닭이나 갈비찜 같은 메뉴가 나오면 고기를 다 건져먹고 남은 양념에 밥을 쓱쓱 비벼 맛깔나게 먹는 모습이나 된장국에 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야무져서 또 웃음이 나온다. 수업 시간에는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 밥 먹는 시간이라도 온전히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습관이라는 놈은 꽤나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한 마디씩 할 때가 있다. "오늘은 김치 한 번도 안 먹었구나?", "지난번에도 사과는 안 먹더니, 사과 싫어하는구나?" 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내 말에 늘 그럴듯한 대답을 내놓는다. 


"저는 김치의 식감이 싫어요."

"사과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어서 질렸어요."

"제가 예전에 미역을 먹다가 토한 적이 있어서 미역은 못 먹어요."


'김치가 특별히 식감이 이상한 음식은 아닌데'

'사과를 얼마나 많이 먹으면 질릴 수 있을까'

'미역을 먹고 토한 건 미역 탓이 아니라 그날의 몸 상태가 안 좋은 탓이었을 텐데'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이해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식판에 남은 김치를, 사과를 언급하는 게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보는 연습을 한다. 맛있게 먹었냐는 말로 편식을 지적하고 싶은 내 마음을 꾹꾹 눌러버린다. 그러면 아이들도 기분 좋게 오늘은 어떤 반찬이 제일 맛있었는지 대답해 준다. 코를 막고 김치 한 조각 더 먹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웃으면서 대답하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게 나도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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