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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Apr 02. 2024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고작 두 걸음 달렸을 뿐인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지기 한 달 전부터 주 1회 배구 레슨을 받았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 배구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고, 기왕 하는 거 제대로 배워서 잘 해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우리 코치님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다. 레슨 첫 날, 준비운동을 하는 그 잠깐에도 내가 저질 체력이라는 걸 바로 알아보셨다.

“벌써 힘드세요?”

“어머, 그게 눈에 보이세요?”

코치님은 대답 없이 웃으며 힘들면 조금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그때 그만뒀어야 했다. 준비운동도 제대로 못 따라 할 몸으로 배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게 아니었다. 그때 이미 내 아킬레스건은 힘들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세를 낮추세요’, ‘더 빨리 움직이세요’, ‘겁먹지 마세요’ 같은 피드백을 10번쯤 받고 나면 가뭄에 콩 나듯 잘했다는 칭찬도 들을 수 있었다. 먼지 쌓이듯 조금씩 늘어가는 실력에 재미가 붙었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저녁에 온전히 나를 위한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았다. 레슨을 받는 순간만큼은 가족도 일도 다 잊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한 달 레슨이 끝나고 바로 한 달 더 연장 신청을 했다.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는 그날,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모든 게 평소와 똑같은, 그러니까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준비운동을 하고, 스텝을 연습했다. 블로킹 연습을 하고 수비 연습을 했다. 코치님이 공을 던져주면 공이 떨어질 지점으로 달려가 언더핸드로 받아내는 연습을 했다. 낙하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공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게 중요했으므로 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공에 집중했다. 이윽고 공이 코치님의 손을 떠났고 공을 향해 발을 뗀 그 순간, 딱 두 걸음 달렸을 뿐인데 왼쪽 발목 뒤쪽에 쇳덩이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별이 보이진 않았지만 0.01초 동안 섬광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체육관에 있던 모든 이가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발목을 때린 그 쇳덩이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금 제 발목에 떨어진 게 뭐였죠?"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혼자 달려가다 주저앉았어요."

나는 억울해서 내 발목을 강타한 그 녀석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코치님은 내 얘기를 듣고는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것 같다고 했다. 때는 몰랐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일단 신발을 벗으라는 코치님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잠깐 쉬면 괜찮아질 테니 다들 가서 연습하라고 했다.


여전히 나에게 벌어진 일이 실감 나지 않아 얼떨떨해 하고 있는데 왼쪽 배구화 안쪽에서 발이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잘 발효된 빵처럼 빠르게 부풀어 오르는 발을 운동화 안에서 꺼내야 했다. 배구화 끈을 다 풀어헤치고서야 퉁퉁 부은 발을 탈출 시킬 수 있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다리를 다쳤으니 데리러 오라고 했다. 체육관은 2층이었는데 남편 내려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내려가서 기다릴 수 있을 정도면 오라고 했겠냐??"

남편도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몰라서 한 말일 텐데 괜히 서운해서 화를 냈다. 나도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몰랐기 때문에 다음 날 수업 시간표를 확인했다. 수업이 비는 시간에 잠깐 병원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다음 날 병원에 먼저 들렀다가 목발을 짚고서야 출근할 수 있었고, 며칠 뒤에 수술하고 입원도 했다. 그 뒤로 깁스 생활과 보조기 생활을 거쳐 지금은 아무 것도 없이 절뚝거리며 걸을 수 있는 상태까지 왔다. 다친 지 100일쯤  것 같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져도 인생은 계속된다. 누구나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데 오히려 시련에서 더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이번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서 평소와 다른 경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글로 엮어보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아킬레스건이 늘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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