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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Apr 23. 2024

오늘 대변보셨어요?

대변의 안부를 물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잖아요

(경고! 비위가 약한 자는 이 글을 읽지 마시오.)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한 명의 환자가 된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만난 사이라면 실례였을 질문만 골라서 해대는 곳이 바로 병원이다. 오늘 처음 본 간호사가 나의 생년월일과 몸무게, 가족 병력 따위를 묻고 나는 또 거기에 순순히 답한다. 몸무게를 적을 때는 3초 정도 머뭇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살 좀 뺄걸. 내가 받는 중력이 얼마나 큰 지를 사실대로 말하는 게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금세 병원에서는 아무도 나를 사람으로, 여자로 보지 않고 그저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환자로 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수술 전날에는 위아래 속옷을 다 벗고 환자복만 입은 채로 자라는 말을 3번쯤 들었다. 1인실도 아니고 4인실에서 노브라에 노팬티로 잘 생각을 하니 영 내키지 않았다. 몇 시간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나는 간호사 몰래 속옷을 입고 잤다. 아침에 간호사가 오기 전에 일어나서 속옷을 벗었고, 속옷을 벗자마자 소변줄을 차게 되었다. 내 침대 난간에는 투명한 소변 주머니가 걸렸다. 나는 요의를 느끼지도 못했고 내 몸에서 소변이 나오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내 소변을 볼 수 있었다. 소변을 보여주고 나니 내가 속옷을 입지 않았다는 사실 따위는 별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 나는 부끄러움과는 멀어졌다.


병실은 작은 실험실 같았다. 관리대상인 환자는 언제나 4명. 누군가 퇴원하면 잠깐 3명이 되기도 하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금방 또 다른 누군가가 뼈가 부러진 채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혈압과 체온을 쟀다. 매일 같은 시각에 밥을 먹었고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도 기록되었다. 밥을 먹고 나면 약을 먹었고 수시로 괜찮냐는 질문을 받았다. 괜찮냐는 질문 끝에는 오늘 대변을 봤냐는 질문도 따라왔다. 안 친한 사람과 나누는 대변 이야기는 늘 불편했다. 내가 그날 대변을 봤다면 대화는 짧게 끝났을 텐데 야속한 대변은 며칠째 나오질 않았다.


"오늘 대변보셨어요?"

"아니요."

"며칠 째죠?"

"4일 째요."

"변비약 드시고 계시죠?"

"네."


며칠 째냐는 물음에 대답만 바꾼 똑같은 대화가 6일째 이어졌다. 같은 병실 선배(?) 말로는 수술 후 항생제를 먹으면 변비에 걸리는 부작용이 있단다. 그래서 매일 대변의 안부를 묻고 변비약을 처방해 주는 거라고. 변비약은 항생제를 쉽게 이기지 못했다. 꼬박꼬박 챙겨 먹는데도 신호가 올 기미가 안 보였다. 6일째 되는 날에는 6일 동안 먹은 18끼의 식사가 단 한 번도 배출된 적 없다는 사실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무작정 화장실로 떠났다. 긴 싸움이 될 것 같으니 병실 안에 있는 화장실이 아닌 3층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갔다.


다치기 전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왜 그렇게까지 넓어야 하는지 몰랐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서 변기에 앉고, 볼일을 마치고 다시 휠체어를 돌려 나오려면 그 정도 공간은 꼭 필요했다. 보통 화장실 보다 족히 3배는 넓은 그곳. 그곳에서 나와 대변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신호도 없는 배에 내가 먼저 잔뜩 힘을 주었더니 생뚱맞게도 재작년 5학년 아이들이 알려준 "똥 싸세요 똥을 싸세요. 보들보들한 똥을 싸세요." 하는 노래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다음 가사가 뭐더라. "똥꼬에 힘을 빼세요. 그래야 똥이 잘 나온답니다." 배에는 힘을 주고 똥꼬에는 힘을 빼야 한단다. 노래가 시키는 대로 해봤지만 보들보들한 똥은 나오지 않았다. 실패였다.


그날은 시간이 날 때마다 화장실에 갔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굳게 닫힌 나의 항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일 또 간호사가 물어올 텐데 7일 째라는 말을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때였다. 여린 새싹이 겨우내 얼었던 흙을 뚫고 나오듯 아주 작고 단단한 무언가가 살짝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 사람처럼 들떠서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망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고개를 내밀지나 말지. 도로 집어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니 삐져나온 똥이었다. 퇴로를 차단당한 군인처럼 나는 묵묵히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똥 누는 데 집중했다. 자연분만을 해 본 적은 없지만 이 정도 힘이면 애도 낳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때, 걸려있던 그것이 퐁당 빠졌다. 눈으로 확인한 그것은 대변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작았다. 몇 분 간의 사투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는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나는 해냈다. 내일은 대변을 봤다고 대답할 수 있다.


다음 날이 되었다. 나는 간호사가 얼른 내 대변의 안부를 물어봐주길 내심 기다리기까지 했다. 내 설레는 마음을 알 턱이 없는 간호사는 예의 그 단조로운 말투로 나에게 물었다.


"대변보셨어요?"

"네!"

"시원하게 보셨어요?"

정곡을 시원하게 찌르는 질문이었다.

"아니요."

나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또다시 제 역할을 못하는 변비약을 처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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