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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Apr 16. 2024

수술, 뭐 별 거 있어?

네, 별 거 있어요.

수술 날짜가 잡힌 뒤로 내적 갈등에 빠졌다. 수술 후기를 찾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첫째를 임신하고 배가 두꺼비만큼이나 부풀어 올랐을 때였다. 뱃속 아가가 역아(뱃속에서 거꾸로 자리 잡은 아기)라서 제왕절개를 하기로 했다. 난생처음 하는 출산에, 난생처음 하는 수술. 봉긋하게 솟아오른 배만큼이나 잔뜩 긴장해서 밤마다 제왕절개 후기를 찾아보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는 짧고 간결한 수술 후기는 대충 읽고 넘겼으나, 잠깐의 긴장이나 작은 고통, 약간의 불편함도 생생하게 그려낸 후기는 읽고 또 읽으며 괴로워했다. 그런 후기를 읽은 날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을 그려보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하루하루 다가오는 수술날짜가 마치 죽을 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나는 정기검진일에 원장님께 진지한 얼굴로 "정말로 제 배를 가르실 건가요?"라는 어이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는데,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오른다. 다행히 원장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배를 가른다고 생각하면 무서울 수 있겠네요. 근데 생각해 보면 고생은 내가 다해요. 산모는 그냥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면 되잖아."


실제로 수술을 해보니 그 말은 정말 맞는 말이었다. 어차피 마취를 하면 배를 갈랐는지 다리를 잘랐는지도 모를 만큼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수술 후 며칠 동안은 통증으로 걷기도 힘들긴 했지만 무통주사가 있으니 못 버틸 통증도 아니었다. 그렇게 제왕절개가 별 거 아님(?)을 깨달은 나는 둘째를 출산할 땐 원장님과 농담을 하며 수술을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괜히 자세한 후기를 읽으면 겁만 날 터, 최대한 수술 과정만 간략히 적은 후기를 찾아 읽었다. 아킬레스건 봉합술도 제왕절개와 마찬가지로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하는데 수술 시간 내내 엎드린 자세로 있는 게 생각보다 불편하니 재워달라고 요청할 것. 내가 기억할 것은 이거 하나였다. 제왕절개도 두 번이나 했는데 이 정도쯤이야. 나는 셋째 출산이라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무덤덤했다.


드디어 수술 날이 되었는데, 제왕절개와 발목 수술은 시작부터 달랐다. 아이를 낳으러 분만실에 갈 때는 휠체어를 타고 갔는데 끊어진 아킬레스건을 이어붙이러 수술실에 갈 때는 베드에 누운 채로 실려 갔다. 새하얀 병원 천장의 LED등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걸 보면서 가다보니 중환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농축된 긴장이 느껴졌다. 내 표정을 읽은 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말을 건넸는데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우등 자세로 마취주사를 맞고 재워달라고 요청한 뒤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수술이 거의 끝나있었고 병실로 다시 돌아오면서 후련한 기분마저 느꼈다. 그런데 후련함도 잠시, 마취가 깨면서 발목에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분명 무통주사도 맞고 있는데, 많이 아프면 누르라던 무통 버튼도 화풀이하듯 쉴 새 없이 누르고 있는데 통증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 세상에 나와 내 고통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내 발목의 통증은 내 시공간을 가득 채웠고 통증과 관련 없는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간호사를 호출해서 진통제 주사를 추가로 맞았다. 주사를 맞으면서 다음 주사는 몇 시간 뒤에 맞을 수 있냐고 물었고 4시간 뒤에 또 맞을 수 있다 답을 들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시계태엽을 빠르게 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빨리 4시간이 지나서 진통제를 추가로 맞을 수 있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도 못 감는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였다. 너무 아파서 수술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술 후기를 읽어보려 가입했던 발목 환자 카페에 접속했다. 마침 나와 같은 날 같은 수술하고 나와 같은 증상으로 잠을 못 이루는 누군가가 4분 전에 올린 따끈따끈한 새 글이 있었다. 마취가 풀리고 나니 미친 듯이 아픈데 이렇게까지 아픈 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글이었다. 마치 내가 쓴 글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댓글을 달았다. 나도 지금 죽겠노라고. 채팅보다 빠른 실시간 댓글로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공유했다. 무통도 엉덩이 주사도 아무것도 안 통하는 지금의 통증에 대해, 처음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그날밤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지금의 통증에 대해 서로 털어놓고 공감하고 나니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이런 걸 동병상련이라고 하던가. 그 날 밤은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낯선 이 덕분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도 덜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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