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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Jan 31. 2024

Happy New Month

1월이 끝났다고 올해가 끝난 건 아니니까요.

5, 4, 3, 2, 1
Happy New Year!


정확히 한 달 전, 새해를 맞이하며 카운트다운하던 그날을 기억하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수면 시간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그 밤에 가장 짧을지도 모른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기어코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새해를 맞이했다는 벅찬 감동을 안고 잠깐 잠들었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해돋이까지 보러 가니 말이다.


그런데 새해의 그 새뜻한 기분은 1월이 다 가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풍선 주둥이를 아무리 꽉 묶어놔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바람이 빠지듯, 이맘때쯤이면 새해 첫날의 다짐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만다. 1월 초에 비해 나아진 것이라고는 더 이상 날짜를 쓸 때 2023을 썼다가 지우고 다시 2024라고 쓰는 실수를 안 한다는 것뿐이다. 운동을 하겠다거나 술을 줄여보겠다고 다짐하던 순간은 이미 추억 속에 저장해버린 후다.


새해를 맞이하는 건 다 쓴 일기장을 덮고 새로운 일기장을 펼치는 일이다. 손때 하나 없이 깨끗하고 납작한 공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표지를 넘겨보는 일이다. 한 번도 펼쳐진 적 없는 표지를 열어젖혀 꾹꾹 눌러보는 일이며 어느 때보다 단정한 마음과 정갈한 글씨로 이 한 권을 채우겠노라 다짐하는 일이다.


이 마음을 1년 내내 유지하는 건 어렵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3일만 지나도 오늘 하루쯤 건너뛰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고, 일주일만 지나도 대충 갈겨 쓴 글씨가 나름대로 느낌 있다며 애써 포장하려 든다. 꾸준히 해 내는 게 어려운 나를 위해 올해는 작심 3일을 120번 하겠다는 묘수도 내어보지만, 3일에 한 번 작심 하는 일도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여기까지가 매년 이맘때쯤 내 모습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올해는 달라졌다. 내가 이렇게 달라진 건 순전히 해빗트래커 덕분이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있던 1월의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구글시트로 신년계획표 만들기'영상으로 이끌었다. 1월이 벌써 2주나 지났는데 아직 계획도 안 세우고 뭐 하냐는 다그침처럼 느껴졌다. 남의 말은 잘 안 듣지만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 즐기는 나는, 곧바로 시트 URL을 복사해서 당장 생각나는 3가지를 적었다.

스프레드시트로 체크하고 있는 해빗트래커


일주일쯤 해보니 체크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전에 내가 계획한 일을 다 하고 나면 오후에 낮잠을 자든 드라마를 보든 자유를 즐겼다. 내친김에 욕심을 내서 두 가지를 추가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몇 번 빼먹은 날도 있다. 그게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달성률 100%가 깨지는 게 싫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 1월 25일, '하기 싫은 날은 하지 말자'라는 규칙을 추가했다. 해빗트래커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니까.


생각해 보니 나는 계획을 못 지키는 사람이라기보다 계획에 얽매이는 게 싫은 사람이었다. 계획을 세웠을 때 그걸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지키지 못했을 때 느낄 실패감, 그러다 흐지부지되고 말았을 때 느낄 패배감이 싫어 계획 세우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계획적인 것보다 즉흥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나는 매일의 루틴을 지키는 일에서 안정감을 얻지만 한 번씩 루틴을 깨는 데서 오는 해방감과 희열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1월 1일에 계획을 세우지 않고 1월 13일에 시작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1월 1일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에 첫 발자국을 찍을 때와 비슷한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아무 날에는 이미 어지럽혀진 눈길에 들어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해빗트래커를 쓰면서 나의 하루를 세심하게 살피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과 크게 의미 없는 일을 알게 되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일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수 있다. 서브웨이와 마라탕처럼 내 습관도 자유자재로 커스터마이징하는 기쁨을 누린다.


생각해 보면 1월 1일도 1월 31일도 모두 똑같은 하루일 뿐이다. '새해'에 의미를 두고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하는 건 좋지만, 본의 아니게 다른 날들이 조연급으로 밀려나는 것 같아 아쉽다. 이제 내일이면 2월이다. 1월 1일 카운트다운 하던 그 마음으로 힘차게 외쳐보자. Happy New Month!! 새로운 한 달은 또 시작된다. 매일 우리에게 새롭게 찾아오는 모든 Happy New Day를 어떻게 채워나갈지 설레는 마음으로 고민해 본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이맘때쯤 떠오르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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