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일 아침은, 정확히는 아가들이 눈을 떠 어린이집 등원할 때까지의 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흘러간다. 두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머리 만져주고. 양말과 신발을 신겨 겨우 유모차에 앉히려는 순간 한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몸에 잔뜩 힘을 준다. 그렇다. 바로 그 신호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동작을 리버스 하여 다시 진행한다. 휴우....
엊그제도 이런 과정을 반복해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에 어렵사리 도착했다. 아가들을 각자의 반에 들여보내고 밖으로 나오니 '하아'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쌍둥이 유모차를 유모차 전용 주차공간에 대고 건물 바깥으로 막 나가려던 때였다.
"쌍둥이 어머님이신가 봐요? 안녕하세요."
수수한 감색 양복에 옅은 하늘색 넥타이를 한 남자가 반색을 하며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삼십 대 후반쯤 되었을까? 남자는 키가 작고 몸이 왜소했다. 3대 7로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어 넘겼으나 숱이 많지 않았다. 나는 마지못해 인사를 받았다.
"어머님, 이것 좀 봐주실래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해 드리려 해요."
남자는 금방이라도 내가 자리를 뜰 것처럼 보였는지 소책자를 부리나케 내게 안겼다. G학습지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님, 아이들 월령이 어떻게 되나요? 요즘은 어머님들이 아이들 교육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셔서 돌만 지나도 바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세요. 저희 학습지는 국내 종합 학습지 중에선 유일하게 유아에서 고교까지 전 교육과정을 맞춤식으로 다룬답니다. 월령에 맞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으니 한번 봐주세요."
남자는 막힘없이 한 번에 문장들을 토해내더니 그제야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제 겨우 아빠, 엄마를 소리로 옮기는 아가들에게 교육이라니! 조금 민망하기도, 우습기도 했다. 피식 떠오르는 웃음을 삼키고 소책자에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남자는 혹시 모를 성사를 기대하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을 피해 눈을 아래로 내리까는데 누렇게 변색된 와이셔츠 깃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와이셔츠를 바라보면서 나는 딴생각을 했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 아저씨에게도 가족이 있겠지? 몇 시부터 나와 기다리고 계셨던 걸까. 식사는 하셨으려나...'
예전의 나라면 냉소적으로 얼굴을 돌렸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돌아설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아직 많이 어리긴 한데 제가 살펴보고 추후에라도 필요하면 이 번호로 연락드릴게요. 수고하세요."
"어머님 잘 검토하시고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몇 번이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남자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곱게 물든 아파트 정원의 은행나무가 표표히 잎을 떨구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쳤다.
그날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각. 아가들을 재우고 거실로 나왔더니 남편이 축 처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남편의 손에는 맥주가 들려있었다.
“기운 없어 보이나? 글쎄, 일이야 늘 많은 거고 그렇게 힘들진 않은데?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아. 그리고 우리 쌍둥이 먹는 양이 장난 아닌데 딴생각 말고 열심히 다녀야지, 안 그래?”
남편은 맥주를 들이켜며 호탕하게 웃었다. 호쾌한 웃음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학습지 아저씨도 치킨집 사장님도 우리 남편도 가족을 위해 힘들어도 밥벌이를 하는 거다. 지겹고 지루해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새벽같이 집을 나가 별을 헤며 들어오는 그런 전쟁 같은 삶을 이어가는 거다. 그래도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아내와 무럭무럭 자라나는 자식들이 있다면 조금은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