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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희 Oct 25. 2019

공병 하나에 100원을 아시나요?



 어릴 적 공병을 모아 슈퍼마켓에 가져가면 돈을 주었다. 맥주병이 30원, 4홉들이(640ml) 소주병이 20원이었는데 델몬트 주스병은 100원이나 주었다. 캘리포니아산 오렌지로 만들었다는 델몬트 주스는 다른 오렌지주스에 비해 갑절은 비쌌고 비싼 몸값만큼 직사각의 단단한 유리 공병도 값을 더 쳐주었다.


 집에 오시는 손님의 손에 델몬트 주스가 든 초록 박스가 들려있으면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한 공기가 흘렀다. 명절에 초록색 박스 러시가 이어지면 나와 동생들은 주스 마실 생각에 침이 꼴깍, 공병을 내다 팔 생각에 미소가 꼴깍 삼켜졌다.


 동생들과 나는 정원 한 구석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공병이 생길 때마다 병을 잘 헹궈 모아두었다. 어느 정도 모아지면 공병이 담긴 상자를 들고 슈퍼마켓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손에는 부라보콘이나 캔디바가 쥐어져 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전리품이 델몬트 주스였다면 28개월 쌍둥이 두 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딸기’다. 울다가도 “얘들아 딸기 먹자!”하면 눈물을 뚝 그치고 달려온다.


 어느 때부터 쌍둥이가 착한 행동을 하면 부상으로 딸기를 주기 시작했다. 읽고 난 책을 잘 정리하면 딸기 세알, 밥을 잘 먹으면 후식으로 딸기 다섯 알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이 '딸기 놀이'를 즐겼고 잘 따라줬다.


 그토록 좋아하는 딸기지만 문제가 되는  역시 가격. 아파트 상가의 마트에서 딸기 한 팩을 8,900원에 판다. 거기에 ‘친환경’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으면 만원을 훌쩍 넘겨버린다. 한 팩에는 보통 23~24개의 딸기가 들어있다. 달라는대로 덥석 덥석 주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지하철역 인근의 마트는 아파트 상가 마트보다는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면 그곳에 들러 딸기의 '현재 상황'을 파악한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몇 팩씩 담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며칠 전 성수동에 있는 한 카페를 찾아갔다. 싸락눈이 내리는 궂은 길을 뚫고 어렵게 찾아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휴업 중이었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다른 곳에서라도 커피를 마셔야지 싶었다.


 커피 마실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내 눈을 강하게 잡아끄는 현수막이 시야에 들어왔.


 “딸기 3팩 8,900원에 모십니다.”


 딸기다!, 하며 달려오는 쌍둥이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흩뿌리는 싸락눈과 칼바람을 뚫고 몸을 날리다시피 마트로 달려갔다. 크기는 조금 작지만 빨갛게 잘 익은 싱싱한 딸기를 정말로 3팩 8,900원에 팔고 있었다. 아기들 먹일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배시시 걸렸다.


 델몬트 박스가 대량으로 들어온 어느 해 명절처럼 딸기가 대량으로 들어온 이 날이 쌍둥이에겐 명절 같은 날이었을 것이다. 이 날 아이들이 얼마나 원 없이 딸기를 먹었는지,


 “재아야 딸기 더 먹을래?”

 (도리도리)


 “재이야 딸기 더 먹을래?”

 (도리도리)


 우연한 딸기 횡재로 행복한 밤을 보내며 어린 시절의 델몬트 주스를 떠올렸다. 엄마가 따라주시는 진하디 진한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행복해하던 기억, 그 병을 돈과 맞바꿀 생각에 신이 나던 기억.


 쌍둥이도 훗날 어린 시절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며 행복해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란다.






*델몬트 주스병에 대한 추억 하나 더

외할머니 댁에 가면 냉장고에 꼭 있던 '주스 보리차병'.

외할머니는 보리차를 넣기에 이보다 더 좋은 병은 없다면서 델몬트 주스병에 보리차를 부어 냉장고에 두셨다.

낑낑 대며 유리병을 들어 잔에 따르던 기억, 시원하고 구수했던 보리차의 맛. 아련한 그 시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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