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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희 Oct 27. 2019

나의 첫 돼지갈비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내 모습이 항상 궁금했다. 존재했으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 아무리 애를 써도 복원되지 않는 서너 살 이전의 시간. 그 시절이 궁금해질 때마다 엄마를 붙들고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묻고 또 물었다. 미지의 시간들은 철저히 엄마의 기억에 의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아이를 낳은 후 질문은 더 잦아졌고 집요해졌다. 두 아이가 커갈수록 그 시절 나는 어땠는지 더 알고 싶어 졌다. 엄마의 기억을 샅샅이 들추려 계속 시도했고, 엄마 역시 희미해진 기억의 끈을 잡아가며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하셨다.


 하루는 엄마를 모시고 서초동의 한 갈빗집에 갔다. 사실 사심 가득한 선택이었다. 나는 돼지갈비를 정말 좋아한다.


 예전에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의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뭘 드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방송인 강호동 씨가 이런 대답을 했다.


 “호동이는예 돼지갈비에 평양냉면 묵겠심니더.”


 과연 그답다, 나도 그럴 것이다,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돼지갈비는 그럴 자격이 있는 음식이니까.


 그 갈빗집에서 노릇하게 구워진 갈비를 호호 불어가며 신나게 뜯고 있을 때였다. 눈길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더니 엄마가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도 엄마에게 긋 웃은 후 여느 때처럼 말머리를 열었다.


 “그런데 엄마.”


 “응.


 “방금 궁금해진 건데, 난 몇 살 때 처음 갈비를 먹었어?”


 “너? 두 돌 무렵 우리 부산 살 때, 그때 처음 먹었어. 확실히 기억하지.”


 “아 그래?”


 “응. 하루는 아빠랑 셋이서 갈빗집에서 외식을 하게 됐는데 계속 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갈비 하나를 쥐어줬더니 정말로 잘 뜯더구나.”


 “허어, 두 살짜리가 대단했네?”


 내 얘기인데도 신기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고기야 곧잘 먹여봤지만 갈비는 그 날이 처음이었거든? 고 어린 게 고사리손으로 갈비를 딱 쥐어선 고개를 이리저리 틀어가며 어찌나 야무지게 뜯는지. 다 먹은 뼈다귀를 내게 건네는데 살점 하나 없더라니깐?”


 “으흐흐 너무 웃긴다.”


 “참 귀여웠어. 야무졌고.”


 엄마는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가에 슬몃 미소를 지으셨다.


 갈비를 잘 먹는 것도 유전인가? 아니 갈비를 잘 뜯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 걸까? 우리 쌍둥이는 그 시절의 나보다 몇 달 더 일찍 갈비에 입문했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와인에 곁들일 메뉴로 돼지등갈비구이를 선택했다. 선홍색이 선명한 싱싱한 돼지 등갈비에 올리브 오일과 트러플 솔트, 레몬 페퍼와 허브로 마리네이드 하고 오븐구이를 했다. 완성된 갈비구이를 플레이트에 올리는데 꼬맹이들이 냄새를 맡고 주방으로 다가왔다.


 “아빠 엄마에게 특별한 날이니 너희에게도 특별한 선물을 줄게!”


 애들 손에 등갈비를 하나씩 주려하니 남편은 난리가 났다. 두 돌도 안된 애들에게 갈비를 주려하다니, 그러다가 갈비  뼛조각이라도 삼키면 어떡하냐고 야단이었다.


 나는 음식을 먹이는 것이든, 다른 부분에서든, 육아 전반에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걱정도 크게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긴다. 조심성이 많은 남편은 나의 육아방식이 가끔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줄곧 나의 설득에 넘어가 내 의견을 잘 따라줬고, 화답하듯 쌍둥이도 별 무리 없이 자라고 있다.


 이번에도 나는 씨익, 웃고는 “먹기 좋은 갈비로만 골라서 애들에게 주고 세심히 살필게.”라고 장담했다. 결과는? 다행히 아무 문제없었다. 처음 먹는 갈비였지만 쌍둥이는 열렬히 갈비를 잘 뜯었고, 맛있는 갈비와 함께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을 즐겁게 만끽할 수 있었다.

 오늘 오랜만에 돼지 양념갈비를 만들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맛간장에 붉은 홍옥을 잔뜩 갈아 넣고, 골드키위에 큼지막한 배도 한 개, 매실액과 전통조청도 콸콸 부어줬다. 면 보자기로 돼지갈비의 핏물을 하나하나 잡은 후 스텐 바트에 갈비를 켜켜이 쌓고 다 만든 양념장을 갈비가 푹 잠길 때까지 부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양념이 갈비에 잘 배어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무쇠 팬을 달궈 석쇠에서 제대로 구워줘야지. 아이들이 무아지경으로 돼지갈비를 뜯을 걸 생각하니 행복감에 웃음이 나왔다.


 잘 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표정은 아마 엄마를 닮았을 것이다. 두 살의 나나 지금의 나나, 잘 먹는 나를 볼 때면 언제나 배시시 웃고 있는 우리 엄마의 얼굴. 엄마의 얼굴 위로 내 얼굴이 겹쳐진다.






recipe

                         심플 돼지등갈비구이



재료

돼지 등갈비 1kg, 올리브 오일 4큰술, 맛간장 2큰술, 생강청 1큰술, 소금•후추 약간씩


만드는 방법

1. 돼지 등갈비는 1각씩 절단하여 찬물에 1시간 담가 핏물을 뺀다.

2. 체에 밭쳐 물기를 뺀 등갈비사선으로 칼집을 넣는다.

3. 등갈비 올리브 오일, 맛간장, 생강청, 소금, 후추로 만든 양념장을 부어 조물조물 버무린 후 30분간 잰다.

4. 바 달군 웍에서 등갈비를 4분여 구워 육즙을 잡는다.

5.180도로 예열해둔 오븐에서 40분간 구워 완성한다.



*양념장에 버무린 등갈비 위에 신선한 로즈메리나 바질 등의 허브를 곁들여 구우면 등갈비의 향과 풍미가 더 좋아져요. 레드와인이나 맥주와도 잘 어울리니 특별한 날 소중한 분과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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