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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7. 2019

꽃보다 니 둘   #1 나는 연년생 엄마.

"하지 말라고!"

"왜! 내가 하고 싶다는데 네가 뭔데!"

"저리 가서 하라고!"

"싫은데~ 내가 왜~ 여기서 할 건데~"

"아. 저리 가라고!"


이쯤 되면 내가 나설 차례.

"야아아아아아!"

오랜 강의로 다져진, 복식호흡에 의한 나의 찰진 목소리. 오늘도 제대로다.


"오빠가 자꾸 내 옆에서 야구 연습하잖아!"

"내가 하겠다는데, 네가 뭔데 하라마라야.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연습도 못해?"

"딴 데 가서 하라고. 꼭 내 옆에서 그걸 해야 돼?"

아. 앙칼지다.

"화났어요? 어쩌라고요? 때려봐요~ 못 때리겠죠? 어쩌라고요?"

아. 얄밉다.


"야아아앗! 당장 그만 못해?"

그제야 좀 잠잠해진다.

것들이 이젠 좀 컸나 보다. 예전엔 고함 한마디에 깨갱하며 싸움 중단이었는데, 이젠 목청껏 두세 번 소리를 질러대야 중단한다. 아. 목이 멘다. 켁켁.


오늘 싸움은 민혁이가 이 넓은 집 중에서 하필이면 민서 방에서! 엄마 옆도 있고, 아빠 옆도 있는데 하필 민서 옆에서! 배팅 연습을 하느라 벌어진 다툼이다.

야구공 하나면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민혁이는 야구선수가 꿈이다. 문제는 그 사랑해 마지않는 야구 연습을 집에서도 하고 싶어 한다는 것. 공도 무서워 죽겠는데, 야구 배트까지 휘두른다. 사실 얼마 전엔 야구 배트를 들고 타격자세를 취하며 폼을 잡다가 민서의 팔 끝을 살짝이지만 실수로 가격한 적도 있는터라, 민서는 오빠가 야구배트만 잡으면 예민해진다.


이제 엄마가 개입했으니, 야구 연습은 끝이다. 그 대신 우리 민혁이가 택한 것은 야구 응원가 부르기.

얘는 sk팬이지만 온갖 팀들의 야구 응원가를 다 섭렵하고 있다.

"최강 기아 타이거즈 버나디나! 최강 기아 타이거즈 승리를 위해! 버나디나 헤이 헤이 버나디나 헤이~ 최강 기아 타이거즈 승리를 위해!" 심지어 이 버나디나라는 선수는 현재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다. 한 응원가에 꽂히는 날은 그 곡만 무한반복이다. 응원가는 우렁차게 불러야 제맛이다. 우리 아들은 나를 닮아 목청이 크다.

결론은 아주 시끄럽다.


"! 시끄러워!"

차전 시작이다.

"왜!! 내 방에서 노래 부르는데 니는 또 뭣 때문에 그러는데!"

"조용히 부르라고! 다 들리잖아!"

"아! 진짜!  너 세젤예냐?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애! 너도 댄스 연습할 때, 노래 틀어놓잖아!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자. 또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야아아아악악악!!!"

이제 조용해진다. 더 하면 이제 위험하다는 걸 저 두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나 보다.

'야! 똑똑한데.' 속으로 감탄한다.


저녁 준비가 다 됐다.

"밥 먹어~"

"어. 조금만." 둘이서 합창을 한다.

방에 가보니 둘이서 보드게임에 한창이다. 죽어라 싸워대더니 이제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낄낄대고 웃기까지 한다. 그 둘 싸움의 싱거움에 웃음이 피식 나온다.

"밥 먹으라고."

"어. 이번판만 하고 갈게."     

우리 집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4학년 우리 아드님 김민혁군과 3학년 우리 따님 김민서 양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별것 아닌 일로 싸움을 벌인다. 딱 12개월 차이 나는 우리 집 남매는 서로가 가장 좋은 놀이 상대이자, 싸움 상대이기도 하다.

어느 누가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아니다. 남매 싸움이 칼로 물 베기다. 내가 보기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소한 일들로 툭하면 쌈박질을 해대는 두 분이시다.


"오빠! 봤잖아아아!"

"보긴 뭘 봐. 안 봤거든!"

"근데 내가 그거 낼 거 어떻게 알았는데!"

"내가 똑똑해서 그런 걸 어쩌라고!"

또다시 내 차례가 왔다. 목청을 가다듬는다.

"야아 아악 악악악! 켁"

나는 연년생 엄마다. 해마다 전투력이 상승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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