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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Nov 26. 2019

꽃보다 니 둘 #4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4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

"엄마, 휴지심 있어?"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 집에서 뒹굴거리던 민서가 휴지심을 찾는다. 수수깡, 색띠지, 가위, 풀, 스카치테이프 등 온갖 만들기 도구들을 들고 서 있다. 만들고 싶은 게 있단다.


휴지심이라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다. 우리 집은 '휴지심부자'다. 아이들이 유치원 입학하기 전, 선배 엄마들로부터 전수받은 유치원 대비 목록 중 하나가 '휴지심 모아두기'였다. 유치원 준비물이 휴지심인 경우가 자주 있다고 했다. 미리 모아두지 않으면, 쌩으로 두루마리 휴지심을 뽑아내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란다. 유치원 입학을 대비해서 휴지심을 차곡차곡 모아둔 덕분에 준비물 보낼 때 여분의 휴지심까지 넉넉히 보내줄 수 있었다. 휴지심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도 요긴히 활용되다가, 아이들이 3학년, 4학년이 된 지금은 별로 쓸 일이 없어서 죄다 갖다 버릴까 하던 참에 민서의 휴지심 요구는 반가웠다.


민서는 휴지심을 받아 들고 공부방으로 향했다. 침대 위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던 민혁이도 쫄래쫄래 민서 뒤를 따른다. 청소기를 돌리는 사이 둘은 공부방 문을 닫고 작품세계에 돌입하셨다.

종알종알 말도 많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 거리기도 한다. 소리만 들어도 참 정겹다.

휴지심 몇 개를 더 들고 슬쩍 문을 열었다.

"휴지심 더 줘? 휴지심 더 가져왔는데."

"나!!" 민혁이다.

"나도!!" 민서다.

"내가 먼저 달라고 했다." 민혁이다.

"그게 뭐. 먼저 달라고 했으면 다 가져야 돼?" 민서도 지지 않고 맞선다.

또 티격태격 시작이다. 휴지심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많은데도 둘이 저러고 있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잔소리가 내 입에서 막 튀어나가려는 찰나였다.

"나 근데 휴지심 필요 없는데." 민혁이다.

"나도 이거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민서다.

둘 다 다시 만들기 모드로 돌입한다.

띠로리~~~

얘네 지금 뭐한 거니. 필요하지도 않은 휴지심 때문에 싸운 거였단 말인가? 어이상실이다. 얘네들은 오늘은 무얼 가지고 싸울지 연구하는 애들인듯하다.

그래. 잘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싸움의 원인, 휴지심을 들이민 내가 죄! 인! 이! 다!

피식피식 어이없는 웃음을 날리며 공부방에서 후퇴했다.


그 후로도 한참을 꽁냥꽁냥 거리며 만들기에 몰두하던 두 녀석들이 쪼르르 달려 나온다. 각자의 손엔 멋진 결과물들이 들려있다. 민서는 마이크를 든 어여쁜 소녀를, 민혁이는 낚시를 하는 소년을 만들어놨다. 이제는 무얼 만들어도 제법 디테일이 살아있다. 크긴 컸다. 내 새끼들.

그래.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더라. 싸우는 게 일상이어도 금세 헤헤거리며 잘 노는 아이들이 난 너무 좋다. 서로 의지하면서 그렇게 예쁘게 커라.

연년생 내 새끼들. 내일은 또 뭘 가지고 싸울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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