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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Nov 24. 2019

꽃보다  니 둘 #5 딸 키우는 재미


민서는 일주일에 두 번 댄스학원에 다닌다. 걸그룹 음악에 맞춰 안무를 배우는 방송댄스반이다. 학원차량을 운영하지않아서 엄마아빠가 시간이 안될때는 걸어다녀야 할때도 있는데, 학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민서의 표정은 언제나 밝다. 저렇게 춤이 좋을까 싶다.


민서는 어릴 때부터 다리 찢기를 힘들이지 않게 하고 몸이 유연했다. 음악을 틀어놓으면 그 음악과 어울리는 동작을 힘들이지 않게 해내고, 걸그룹 영상을 몇 번 보면 금세 따라 하곤 했다. 막춤을 추더라도  민서의 웨이브와 춤사위는 남달랐다. 참고로 엄마인 나는 심각한 수준의 몸치이다. 민서의 끼는 아빠에게서 왔다. 아빠와 딸이  추는 막춤과 웨이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시 그 아빠에 그 딸이었다. 어릴 땐 그저 춤추는 게 좋은, 아빠를 닮아서 흥이 많은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댄스학원 선생님은 민서가 춤에 소질이 있다고 했다. 나한테서도 저런 딸이 나올 수 있구나!  신기하기만 하다.


학원을 다니고 나서 처음으로 댄스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아들이 출전하는 검도대회와 야구대회는 숱하게 따라다녀봤어도, 댄스대회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온갖 유단자들이 검을 들고 날라다니는 검도대회가 아니다. 야구방망이 휘두르고, 무서운 공이 날라다니는 야구대회도 아니다. 이름만 들어도 샤랄라 한 댄스대회라니! 검도대회나 야구대회와는 달리 묘한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다. 학원의 공지문을 읽기 전까지는!!!


*방송댄스반 공지
모든 준비 마치고 (의상 착용, 헤어, 메이크업) 8시 40분까지 대기.
절대 늦지 마세요. 9시부터 바로 시작입니다.
순서 끝나고 11시 30쯤 개회식 및 단체사진 촬영, 수상식 있습니다. 환복 하지 말고, 무대의상 그대로 이때까지 관람하시며 기다려 주세요
헤어, 메이크업은 개인별로  준비해주세요.


댄스학원 대회 공지를 읽고 혈압이 급상승한다. 예상치 못한 복병이다. 메이크업이라니!!! 무슨 메이크업이란 말인가! 댄스대회에 메이크업을 직접 하고 가야 하는 거였나? 원래 공연할 때는 메이크업 전문가가 아이들 메이크업을 해주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 주위 발레를 하는 여자아이들은 전문가가 메이크업을 단체로 해주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 사태는 뭐지? 멘붕이었다.


학원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메이크업해주시는 분 따로 계신 거 아니었어요?"

"아! 공연은 메이크업 전문가가 따로 계시는데 대회는 개별적으로 준비해주셔야 해요."

"개별적으로요?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한대요?"

"다들 어머님들이 직접 해주세요. 벨리댄스반 메이크업이 어렵지 방송메이크업은 어렵지 않아요. 속눈썹 붙이는 건 선택이고요. 눈 화장 강조해서 해주시고, 반짝이 같은 거 눈 주위에 붙여서 화려하게 해 주시면 돼요."


허거덩.. 말이 쉽지  저걸 어떻게 해.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수위의 화장인지  본 적이 있어야 따라 하기라도 하지.

다른 아이들은 다들 엄마들이 해준다는데, 엄마도 엄마 나름이다. 난 폭망 했다 싶었다.

예뻐 보이기 위한 화장이라기 보단 거의 잡티 가리고, 맹숭맹숭한 눈썹 보완하는 수준의 화장을 하고 다니는 내게 방송메이크업은 커다란 숙제였다. 아이고, 머리야! 고민 고민하다가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유튜브에 '방송댄스 메이크업'이라고 치면 동영상이 여러 개 나온단다. 그거 보면서 따라 하면 된단다. 화장품은 이런 거 사면된다고 여러 개를 보여주기까지 한다. 오호!!!


수업을 마치고 유튜브를 검색했더니 정말 여러 개가 나온다. 그중 제일 긴 걸로 시청했다. 화장품 종류부터 방송메이크업 방법, 틴트 지우는 방법까지 정말 세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오!! 명강의다.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해볼 만하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냉큼 딸을 데리고 화장품 가게로 나섰다. 내 화장품을 살 때는 바쁜 시간에 쫓겨 늘 사던 제품을 달라해서 후다닥 나왔었는데, 이리도 자세히 매장 제품을 둘러보는 건 실로 오래간만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비비크림도 기능별로 종류가 여러 개고, 쿠션도 종류가 아주 다양해졌다. 액체형 아이라이너는 그리기가 어려워서  펜슬형 아이라이너만 썼었는데, 요즘 아이라이너는 액체형도 아주 그리기가 편하게 나와있다. 신세계다. 매장 직원의  도움을 받아 유튜브에서 본 대로 반짝이는 펄이 들어간 섀도를 여러 개 사고, 강렬한 붉은 계통의  틴트,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볼터치를 사들고 왔다. 딸내미를 키우다 보니 화장품을 살 일도, 화장을 해주는 일도 생기는 구나!

집으로 돌아와 예행연습을 하기로 했다. 처음 화장을 해보는 딸도, 딸에게 처음 화장을 해주게 된 나도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튜브에서 본 대로  아이 메이크업을  하다가 눈이 뾰로롱 마주쳐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틴트를 제대로 못 발라 엉망이 된 입술을 수정하며  웃음이 터지기도 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지다.  이런 게 딸 키우는 재미지 싶었다. 언제 이렇게 커서 화장도 하나.  뭉클해지기도 다.  고작 몇 년만 지나면 한껏 멋 부리고 다닐 민서의  싱그러운 날들이 기다려지다가도, 내 품 안에 있는 이 순간이 아쉬워서 너무 빨리 크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화장을 계기로 만감이 교차했다.


대회날이다. 새벽같이 일어나 어제 연습한 대로 화장을 또 한 번 했다. 오호! 연습한 효과가 있었는지 오늘은 어제보다 더 예쁘다. 처음 써보는 틴트도 번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메이크업 잘했다고 댄스 선생님에게 칭찬까지 받았다. 아! 나의 능력이 메이크업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인가! 흐흐.


민서가 실수 없이  대회를 마쳤다. 큰 무대에서 떨지 않고 잘해준 것만으로도 참으로 대견스러운데, 2위라는 좋은 성적까지 받아주었다.

이번 댄스 대회는 민서와 나에게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딸 키우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이번에 산 민서 화장품은 이모에게서 득템한 화장품 가방에 넣어주었다. 다음 댄스대회 때는 더 예쁘게 꾸며줄께. 딸~~



민서가 저 볼터치 빛깔처럼 곱디고운 꽃길만 걷기를,

민서의 젊은 날이 저 섀도처럼 반짝반짝 빛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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