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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10. 2020

꽃보다 니 둘  #6 아빠와 아들

커가는 아들! 쪼그라드는 아빠!

"아빠!! 아빠아아아!! 오늘은 해준다고 했잖아!!"

"아, 한 시간만 더 있다 나가자고. 이 땡볕에 나가면 더위 먹어."

"그러다가 또 잠들면 내일 나가자고 할 거잖아!"

"아니라고. 조금만 있다가 더위 좀 사그라들면 나가자."

"지금 나가자고! 좀 있다 나갔다가 어두워지면 또 금방 들어가자고 할 거면서!"

"도대체 몇 시간을 하려고 그래.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잖아."

"매일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오래간만에 해주면서 한 시간이 뭐냐고. 지금 나가자. 빨라 나가자고!"

"에휴... 그래. 가자. 가!"


오늘도 아빠와 아들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30여 분간을 밀고 당기고, 토라지고, 성내다가, 다정하게 손 붙잡고 집을 나선다. 뭐니. 당신들은. 나로서는 이해불가이자  연구 대상인 두 사람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민혁이에게 아빠는 그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코치님, 부단한 훈련과정의 동료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야구공을 처음 잡았던 날부터 민혁이의 곁에는 늘 아빠가 있었다. 아빠에게서 야구의 기본기를 배우고, 타격과 투구폼을 점검받곤 했던 민혁이의 실력은 나날이 늘어갔고, 이제는 야구단에서 에이스로 성장했다. 타 야구단 선수반에서 매일같이 훈련을 받는 동네 친구와도 비등하게 경기를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고, 야구를 좋아하는 동네 아이들 매일같이 야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슬라이딩을 하도 해대서 바지에 종종 구멍을 내고 들어오긴 해도 야구를 하고 들어오는 민혁이의 표정은 늘 활기차고 맑다. 그럼에도 민혁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빠와 같이 야구를 하는 시간이다.


민혁이는 늘 기회를 엿보다가 아빠의 옆구리를 찔러 어떻게든 야구하기로 약속을 받아내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어도 기어코 그 약속을 지키고자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저녁을 다 먹고 분리수거를 하는 아빠를 돕겠다며 은근슬쩍 글러브와 공을 챙겨 따라나서기도 한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달밤에 야구하는 사람은 우리 집 두 남자밖에 없다.


문제는 요즘엔 아빠가 야구하러 나가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 야구를 가지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눈물바람 한 적도 있고, 다투기도 한다. 지켜보는 입장인 나로서는 아들이 눈물바람을 하는 날이면 은근히 남편에게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애가 게임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장난질을 치자는 것도 아니고, 운동하러 나가자는 건데 저렇게 아이를 애타게 하는 저 남자는 도대체가 아빠의 마인드가 있는 사람인 건가 싶기도 했다. 사춘기의 남자아이들에게 운동만큼 좋은 것도 없다는데, 협조는 못할 망정 어깃장이나 놓은 것처럼 보였다. 아들과 남편이 실랑이를 할 때면 내 눈에선 나도 모르게 레이저가 쏟아져 나왔다. 물론 남편에게로 향한.


그러던 어느 날, 저녁식사와 반주를 곁들이면서 듣게 된 남편의 진심. 힘들단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단다. 특히 한여름 땡볕에 나가서 야구하고 오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가 아프단다. 두둥!!! 남편의 나이가 새삼스레 크게 다가온다. 그랬구나. 벌써 사십 대 후반이구나. 내 남편이. 사십 대 후반이 문제가 아니라 조금 있으면 오십이라니!  

놀랍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우리는 늙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젊음을 먹고 자란다더니, 우리 애들은 무럭무럭 커가고, 우리는 젊음을 내어주고 이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술잔을 부딪히며 외쳤다. "에휴. 우리 청춘은 어디로 갔다냐."


요즘도 우리 집에선 실랑이가 벌어진다. 가관이다. 실랑이의 주제가 야구뿐만 아니라 한 개가 더 늘었다. 사춘기인 우리 아들이 걸그룹에 입덕을 하셨다. '프로미스 나인''러블리즈'가 그 주인공 되시겠다. 아빠와 취미를 공유하고픈 우리 아들은 아빠도 그 걸그룹에 입덕 시키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시다. 매일 저녁 걸그룹의 유튜브 영상으로 아빠에게 걸그룹 교육을 시키고 있다. 사십 대 후반인 아빠가 걸그룹 구성원의 이름과 얼굴, 특징, 포지션을 다 익히셨다. 난 암만 봐도 그  사람이 이 사람 같은데  남편은 기가 막히게 누가 누군지 구분해낸다.  하도 봤더니 이젠 좀 알겠단다. 이제 그만 들어가서 자겠다는 아빠에게 오늘도 민혁이는 호기롭게 외쳐댄다. "한 개만 더!!!! 영상 하나만 더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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