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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Nov 03. 2019

꽃보다 니 둘 #3 그깟 '아는 형님'이 뭐라고!

주말 늦은 저녁시간이다. TV 보면서 밥 먹는걸 좋아라 하는 우리 두 남매를 위해 오늘도 거실에 상을 폈다. 식탁은 컴퓨터 책상으로 용도 변경된 지 이미 오래다. 오늘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다. 세상에서 삼겹살이 젤로 맛있다는 우리 딸내미 민서와 민혁이는 야물 야물 잘도 먹는다. 내 새끼들이 맛있게 밥 먹는 풍경은 언제 봐도 흐뭇하다.


아이들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먼저 시작한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남편이 곧 들어올 테니 그전에 요리하는데 썼던 식기들을 정리해놓고, 같이 밥을 먹을 요량이었다.


아빠가 퇴근해 집에 왔다. 옷을 갈아입고 상앞에 앉는다.

"아는 형님 보자~ 아는 형님 시작할 시간이야."

평소 TV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이 즐겨보는 프로다. 여기까지가 딱 평화로웠던 시간.


"야! 니 뭐하는데!"

민혁이가 버럭 화를 낸다.

"아. 왜 또!"

"리모컨 왜 던지냐고!"

리모컨을 쥐고 있던 민서가 리모컨을 민혁이 허벅지 위로 던진 모양이다.

"오빠 보고 틀라고 준거잖아!"

"니가 직접 틀면 되지 왜 던지고 난리냐고오오!"

마른하늘에 날락. 얘네들의 다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벼락같이 날아든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랑 말랑하는 4학년 민혁이의 욱함도 마찬가지다. 민서도 오빠의 욱함에 지지 않고 맞설 만큼 컸다.


오늘도 아빠의 개입보다 엄마인 나의 개입이 빨랐다.

"니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그만 못 둬?"

"야! 왜 던지냐고!"

민혁이의 분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엄마가 그만하라 했지!"

엄마의 개입에 민서는 서러움이 터졌다. 훌쩍이며 울기 시작한다.

요 며칠 감기로 고생한 딸을 위해 딸내미 최애 음식인 삼겹살을 준비했던 터였다.

'감기 기운 떨쳐내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딸내미의 눈물에 애가 탄다

민혁이는 여전히 씩씩대며 민서를 째려본다. 아주 잡아먹을 기세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이 난리야!  김민혁!  그만하래두!"

정막함이 흐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대립.


이런... 이번엔 민혁이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흐른다. 아. 돌아버릴 지경이다.

"당장 TV 꺼! 아는 형님은 왜 틀라고 해서 이 사단이야!"

분노는 남편에게로 향한다. 괜히 아는 형님 타령해서 잘 놀면서 삼겹살 먹는 애들  분란이나 일으키다니. 이 모든 원인을 남편에게로 돌린다. 순식간에 '공공의 적'이 된 남편은 말 한마디 못하고 쭈그러져있다.


큰일이다. 내 새끼들 우는 상태로 밥을 더 먹었다간 체하지 싶다.

"니들 오늘부터 일주일간 TV금지야. 리모컨 내가 숨겨놓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 절대 켜지마! 알았어? 밥도 먹지 마! 니들 밥 먹을 자격 없어!" 이 상태에서 밥을 더 먹으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둘 다 숟가락을 놓고 각자 방으로 들어간다. 아. 미치겠다. 내 새끼들 밥 먹여야 하는데. 내 새끼들 밥 다 못 먹어서 걱정, 체할 것도 걱정이다.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고 하다만 설거지에 분노를 쏟아붓는다. 달그락달그락.


쭈그러져있던 남편이 출동한다. 딸 방으로 가서 밥 먹으라고 달랜다. 안 먹는단다.ㅠ  많이 먹었단다.

더 먹어야 되는데 ㅠ

이번엔 아들 방 출동이다.  

"왜 그런 일로 울어. 엄마한테 혼날 수도 있지."

"엄마가 나만 더 많이 혼내잖아!"

민혁이도 서럽다. 서럽게 운다.  

아! 내 마음도 운다. 마음이 아려온다.

내 새끼들 눈에서 눈물 나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나. 또 몇 날 며칠 속앓이 하겠다.


믿었던  남편이 실패했다. 아니. 그리 많이 믿진 않았다. 설거지를 내버려 두고 내가 출동할 차례가 왔다.

민혁이 방으로 갔다. 이불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밥 먹고 바로 누워있음 체할 텐데.'

애가 탄다.  

"민서! 오빠 방으로 와!"

민혁이를 일으켜 세우고, 민서를 부른다.


민혁이 침대에  셋이 걸터앉았다.

둘 다 눈이 벌게져 있다.

"너희!  서로 얼굴 좀 봐!"

서로 등 돌리고 앉아선 미동도 없다.

"너네 둘 중 한 명 집을 나가야  속이 시원하겠어? 그래야 안 싸우겠냐고?"

"......"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럴 땐 기가 막히게 죽이 잘 맞는다.

"누가 나갈래?"

여전히 등을 돌린 체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아.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서로 잘못을 뉘우치며, 서로가 필요하다는 간절함을 드러내며 사과하는 훈훈한 마무리가 나의 큰 그림이었는데... 이. 럴. 수. 가.

할 말을 잊었다. 남편은 문밖에 숨죽이며 서있다. 이 인간에게 구원의 텔레파시를 보내지만 도대체가 통하질 않는다. 아! 저 인간의 눈치 없음에 한탄한다. ! 나의 능력 없음을 한탄한다. 아무래도 심리상담 공부를 해야지 싶다.


순간의 할 말 없음을 견디지 못하고, 감기 기운으로 코를 훌쩍이는 민서에게 휴지를 건넨다.

"코 풀어! 시원하게 흥! 풀어."

민서가 코를 요란하게 풀어댄다. 한번, 두 번, 세 번.

"킥킥."

터졌다.  웃음 많은 민혁이가 민서 님의 요란한 코 푸시는 소리에 빵 터졌다. 민서도 터졌다. 나도 터졌다.

도미노처럼 주르륵 터진다. 아! 빛이 보인다! 희망의 빛이 스며든다.


한참을 낄낄대고 웃다가 밥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민서가 먼저 나가고, 뒤따라나가는 민혁이를 붙잡고 꼭 안아줬다.

'같이 싸웠는데 너만 더 혼낸 거 미안해. 민서가 아팠어서 더 마음이 쓰여서 그랬어.'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하진 못했다. 그래도 이 녀석은 느꼈을 거다. 이걸로 됐다.


우리 네 식구 다시 밥상에 마주 앉았다.

"아는 형님 보고 싶다~~~~~"

총대를 멘 민혁이다. 쭈그러져 있던 남편 얼굴에서도 간절함이 엿보인다. 딸도 응원의 눈빛을 마구마구 쏘아댄다.

아! 또 졌다.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 오분이다.  살짝 한 바퀴 째려봐주고 리모컨을 건넨다.

모두 실실 웃는다. 나도 웃는다. 우리는 다시 화목한 가족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나는 '아는 형님' 안티팬이 아니다. 본의 아니게 우리 집 분란의 원인이 된 '아는 형님', 나도 참 재미있게 보고 있다. 다들 좋지만, 특히 민경훈 씨를 젤로 응원합니다.^^

'아는 형님'팀에게 계속 번창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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