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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24. 2020

꽃보다 니 둘  #11  울 엄마한테 이른다!

나도 엄마 딸 할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이었던  추석. 네다섯 시간 거리인 시댁은 어머님의 만류로 가지 않기로 해서 우리 가족은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친정으로 향했다. 우리 집이랑 같은 도시, 집에서 30분 거리인 친정인데평소에는 일이 바빠 잘 가지도 못했었는데, 모처럼의 여유로운 방문이어서 가는 길 내내 마음이 살랑살랑했다.


여자가 내 살림을 살아내면서  가장 그리운 건 엄마의 밥상을 마주하던 시간들이다. 내 손으로 밥 을지어 아이들을 먹이기 전에는, 내가 늘 당연하게 받아먹던 밥을 짓는 일에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들어가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반갑다. 엄마밥상!

엄마 밥은 특별한 건 없어도 언제 먹어도 맛있다. 언제 마주해도 정겹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고  마음이 풍족해지는 저녁시간이었다. 이때까지는.


"안 한다고는  안 했잖아!!"

한껏 날이 선 민혁이다. 이 한마디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 쩍 하고 금이 갔다. 그냥 지나치기엔 민혁이의 목소리는 너무 뾰족했고, 쩌렁쩌렁했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어? 다시 얘기해봐!"

내 눈에선 아마도 불이 뿜어져 나왔을게다. 나와 민혁, 이 둘이 거실 한복판에서 대치했다. 분위기는 말 그대로 얼음!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저녁상을 물리고, 가족들 둘러앉아 윷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나훈아의 쇼를 보고, 아이들은 게임도 하며 실컷 놀다 보니 어느덧 꽤 늦은 밤되었다.  시간이니 이제 양치하라얘기했다. 늘 그렇듯이 우리 집 두 아이들은 "잠깐만!"을 연발했다. 몇 번을 기다린 끝에 "맘대로 해. 충치 생겨도 난 몰라."라고 했을 뿐이다. 성을 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민혁이가 댓거리를 격하게 한 상황. 그간 사춘기적인 반항기를 조금씩 드러냈던 민혁이였다. '감정조절이 미숙해서 그래. 적당히 넘어가야지.'생각하며 마인드 컨트롤을 해왔던 나인데, 그날은 그러하지 못했다.

내 눈에선 불꽃이 튀었고, 딸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는 엄마는 나를 방으로 들이밀었다. 방에서 감정을 삭히지 못해 씩씩거리고 있는데, 나지막한 울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혁아. 엄마한테 왜 그래. 엄마가 뭔 잘못을 했어. 엄마가 무슨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치카하라고 한 거잖아. 왜 엄마한테 짜증을 부려. 나중에 후회해. 그러지 마."

아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한테 울 엄마  따끔하게 한마디 하신다. 손주가 아무리 예뻐도 딸내미 속상하게 하는 건 못 보겠나 보다.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민혁이는 자기가 잘못한 걸 아는지 잠자코 듣고만 있다. 그 사이 나도 마음이 가라앉았다.


커피를 마시러 거실로 나오다가 민혁이와 눈이 또르르 마주쳤다. 이 자식. 은근슬쩍 씩 웃는다. '흥!'하고 샐쭉하게 고개를 돌리고 뒤돌아서서 나도 슬며시 웃었다. 나는 안다. 그 웃음이 엄마에 대한 사과의 표시라는 걸.


집에 오는 차 안. 아이들에게 큰소리쳤다.

"니들! 봤지? 나도 엄마가 있다고! 할머니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엄마한테 잘해!"


드라마 18어게인의 한장면. 엄마와 딸.

요즘 우리 가족이 최애하는 드라마 '18 어게인'의 한 장면이다. 극 중 정다정(김하늘 분)의 친정엄마가 정다정에게 짜증 부리는 손녀딸(홍시아)을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홍시아! 너 내 딸한테 왜 그러니? 나는 내 딸 속 썩이는 사람은 가만 안 둬. 그게 손녀딸이어두. 얼른 엄마한테 사과해."


딸에게 말한다.

"자식은 원래 다 철부지야. 내가 여기 있으니까 엄마고 할머니지. 나도 엄마한테 가면 그냥 딸이라구. 그러니까 너는 애들한테는 엄마로 살고, 나한테는 영원히 딸로 살아.  누가 속 썩이면 엄마한테 말하구. 엄마는 니 편이야."


드라마를 보다가 아들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아들, 괜스레 씩 웃는다. 어쩜! 이리도 시기적절하게 저런 드라마를 마주하다니!


반복학습의 효과는 확실히 있다. 우리 애들에게는 5살짜리 사촌동생이 있다. 이모의 아들이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가끔 생떼를 부리는 걸로 아주 유명하신 분이다. 얼마 전에도 지 엄마에게  썽을 피워 혼났다고 한다. 사촌동생의 활약상을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아들, 사촌동생한테 훈계 한마디 하셨다.

"야! 너 그러지 마. 너희 엄마, 우리 할머니 딸이야. 할머니한테 혼나!"


내가 이 맛에 산다.

얘들아. 사춘기 시작이라서 예민하고  감정조절 안 되는 거 알고 있는데, 적당히 하자. 엄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다. 니들! 엄마 속상하게 하면 우리 엄마한테 이른다!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을 남편! 보고 있나? 당신도 예외가 아니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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