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앵두 Oct 29. 2020

꽃보다 니 둘 #12 너와 나의 세계

아들과 딸의 사춘기

만 있으면 아들은 6학년. 딸은 5학년.

아이들의 사춘기 전조 단계는 이미 시작되었다. 두 녀석  모두 4학년을 기점으로 예민해지기 시작했는데, 연년생이다 보니 사춘기 시작 시기가 비슷해서 아들과 딸의 차이점이 눈에 확 들어온다.


우선 아들. 요 녀석은 잊을만하면  빵빵 사람 혈압을 끌어올려주시는 분.

얼마 등교 수업하던 날. 코로나로 원격수업을 병행하는  까닭에 학교 사물함에 책을 두고 다닐 수가 없어서,  아이들의 책가방은 늘 무겁다. 6교시 수업할 책을 다 들고 다녀야 해서 가방에 짐이 한가득인데, 우리 아들 가방 속엔 여름방학숙제가 들어있었다. 지금은 10월 말. 선생님이 아직도 여름방학과제를 걷지 않으셨으면 검사하지 않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암만 얘길 해도, 선생님이 갑자기 검사할 수도 있다며 들고 다니겠단다. 괜히 쓸데없는 걸로 고집을 부렸다. 아마 지도 알 거다. 이쯤 되면 검사 안 한다는 거.

등교하는 날아 침, 방학숙제 빼놓고 학교 가랬더니 혁이가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내 가방이야아아아!"

그래. 이 눔의 시끼야. 니 가방이다. 니가 들고 다니겠다는 거 암말 않겠는데, 그럼 가방 무겁다는 소리나 하지 말든가! 듣는 엄마 속상하다. 내 새끼 가방 무거운 거 맘 아파서 하나라도 빼주고 싶어서 그런다! 엄마 잘못이냐? 버럭 할 걸로 버럭 해라. 이놈의 시끼!


오늘 오후의 일이다. 민혁이 학교 선생님은 늘 글 쓰는 과제를 내주신다. 이번 주차 과제는 멸종위기 동물 조사하기. 자료를 검색해서 글을 적고 자기의 의견을 첨가해서 핸드폰으로 글을 올려야 한다. 난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민혁이는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엄마, 마무리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민혁이가 의견을 묻길래,  고무장갑을 벗어두고 민혁이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앞에 글 어떻게 썼는데?"

"보지마아아앗!"

민혁이가 버럭 화를 냈다. 몸까지 홱 돌려가며 아주  거부의 뜻을 확고히 내비쳤다.

"아니. 글을 마무리하려면 전체 맥락을 살펴봐야 할 거 아냐."

"어떻게 썼는지 대충 알 거 아냐!"

"그럴 거면 네가 알아서 해!"

이놈의 시끼를 확 그냥! 그럴 거면 물어보지나 말든지. 내가 니 일기를 보기를 했니, 아님 핸드폰 메시지나 카톡을 보자고 했니. 지가 물어보길래 앞에 쓴 글 좀  보려 했더니 무슨 사람을 몰래 지 일기 훔쳐보는 사람처럼 대하네.


요즘의 우리 아들은 여기서 버럭, 저기서 버럭 해대느라 아주 바쁘시다. 우리 부부는 아이는 절대 때려서 키우면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인지라, 우리 애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부모에게 맞은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요 녀석 등짝을 확 후려치고 싶은 욕구가 불끈불끈 샘솟는다.


아들에 비해 딸의 반항기는 비교적 온화하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딸 민서는 아들처럼 혈압을 급상승하게 하지는 않는다. 대신 아주 자잘하게 신경을 박박 긁어대신다.


코로나로 인해 어떤 날은 원격수업, 어떤 날은 등교 수업이다. 학교 가는 날은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등교 수업하기 전날은 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민서야. 빨리 자야 돼. 세수하고 양치하고 와."

"응. 잠깐만."

그놈의 '잠깐만'소리가 벌써 몇 번째 인지 모른다.

"얼른 들어가서 씻고 오라고!"

민서, 엄마가 열폭하겠다 싶을 때까지 늦장을 부리다가 마지못해 일어나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알았어."

이 대답이 참 묘하다. 대놓고 짜증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버럭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온갖 불만들이 같이 묻어 나온다. 표정도 가관이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입은 툭 튀어나와있다. 온몸동작으로도 불만을 표출한다. 이게 참 애매하다. 혼낼 건덕지가 딱 뽑히질 않는데 지켜보는 나는 묘하게 기분 나쁘다. 혼내기도, 그냥 넘기기도 찜찜하다. 저 콩알만 한 게! 언제 저렇게 커서 반항도 하구. 참 기가 막히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귀엽기도 하고. 어떨 때는 콩하고 쥐어박고 싶기도 하다.


아! 어렵다! 무수히 많은 아이들의 사춘기를 겪어낸 엄마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벌써 이럴진대 본격적인 사춘기가 오면 어찌 감당할 수 있으려나. 얘들아. 엄마가 경고한다! 엄마도 곧 갱년기다! 니들 병이 아무리 깊어도 대한민국 아줌마를 따라 올자 없으니 작작 좀 해라! 갱년기 아줌마 한번 뒤집어지면 니들도 감당 안된다!


사춘기는 엄마의 세계와 함께였던 아이들이  떨어져 나가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지 싶다. 양쪽 모두 서로를 자기의 세계로 끌어들이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겠지만, 사실 이게 쉽지는 않다. 비전문가인  나로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여러 육아 지침서들을 기웃거려 알게된 '인정, 존중, 지지'  이 세단어만은  계속 마음에 담아두려 노력하는데, 실천이 쉽지가 않다.


이 풍성한 가을, 저 나무에 달린 감처럼 아이들과 내가 같이 조화롭게 익어가기를,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해나가기를 소망해본다.

이전 11화 꽃보다 니 둘  #11  울 엄마한테 이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