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알게 된 건 우연이었다.
늘 그렇듯 수업으로 바빴던 주말 오후. 예정되어 있던 수업 하나 가 갑작스레 깨져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거실로 나와보니 TV를 보고 있던 딸내미가 TV는 그대로 켜 둔 채 방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있었다. 잔소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에휴'한숨지으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의자에 앉아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만난 드라마가 '18(에이틴) 어게인'이다. 마침 그 주에 시작한 드라마여서 1,2회를 방영하고 있었다. 별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남자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유독 눈에 띄었다. 얼굴이 낯설은걸 보니 신인배우인 것 같은데, 연기가 압권이었다.
주인공인 '윤상현'이라는 배우가 미스테리한 일로 의식이나 현실은 그대로인체 몸만 과거의 몸으로 바뀌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린 드라마인데, 고등학생의 몸으로 바뀐 '윤상현'을 연기한 이가 바로 '이도현'이라는 배우이다. 대선배와 2인 1역을 하는 거라서 부담이 많았을 텐데, 배역 연구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 젊은 배우의 말투에선 아저씨의 능청스러움이, 아들딸 앞에서 하는 행동에선 중년 아빠의 모습이, 걸음걸이에선 선배 '윤상현'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와! 진짜 연기 잘하네!"를 연발하며 드라마에 빠져들고 있는 사이 민서가 방에서 나왔다. 평소 TV를 즐겨보지 않는 엄마가 드라마에 빠져있는 모습이 신기해 '이게 뭔 일인가!'하고 구경 나왔다가 결국 민서도 주저앉았다.
"연기 정말 잘하지?"에서 시작된 우리의 대화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잘생겼다! 멋있어!"도 추가되었다. 그 배우가 극 중 아들과 딸, 아내를 살피는 눈빛에선 애잔함과 사랑이 묻어 나왔다. 눈빛 하나로 수많은 감정을 전달했다. 눈빛 하나에 울고, 눈빛 하나에 설레었다. 그렇게 민서와 난 '이도현'의 팬이 되었고, 팬클럽에도 동반 가입하기로 했다.
매주 월요일, 화요일 저녁식사 후에 민서와 난 잽싸게 드라마 시청할 준비를 한다. 거실에 이불을 깔고 다과를 준비한다. 드라마 시작 전부터 이미 우린 흥분상태다.
"광고가 왜 이렇게 길어!"
민서가 투덜댄다.
"그러니까! 난 저 제품 절대 안 쓸 거야!"
맞장구치는 건 나다.
"야. 광고주님의 은혜로 드라마 제작비 나오는 거야."
또 입바른 소리 하시는 남편이다. 꼭 저래서 우리한테 집단으로 한소리 들으신다. 드라마를 볼 때도 우리 남편의 입은 가만히 있질 못한다. 구성이 어떻다느니, 저게 실현 가능한 일이냐느니 말씀이 아주 많으시다. 아주 TV평론가가 따로 없다. 아니. 드라마를 그냥 재미있자고 보는 거지, 저렇게 분석하려고 보나? 암만 핀잔을 줘도 그 순간만 조용해지지, 조그만 틈새라도 보일라치면 우리 남편의 입은 또다시 나불나불.
'이도현'만 나오면 발 동동 구르며 좋아 죽는 딸과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눈빛은 마치 외계인을 맞닥뜨렸을 때의 눈빛과 다를 바 없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눈치다. 민서와 내가 '이도현'의 매력에 푹 빠져있을 때면 남편은 꼭 산통을 깬다.
"이도현이 뭐가 잘생겼어! 그냥 평범한데!"
아이고. 저 입을 그냥 콱! 잘만 생겼고만. 아주 어깃장 놓기의 달인이다. 민서와 내가 째려보고 구박을 해야 그 입을 다물어주신다.
가만 보니 남편은 딸의 사랑을 받게 된 '이도현'에게 질투를 하는것 같기도 하다. 심통이 나서 괜스레 이리 찔러보고, 저리 찔러보고 하는 게 아닐까? '혹시 나 때문?'이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고 혼자 키득거리다가 결론을 냈다.
우리 모녀는 사랑에 빠져있고, 남편은 '우리' 때문에 질투의 화신이 되어있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