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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앵두 Oct 19. 2020

꽃보다 니 둘 #9 아들의 첫 가출사건

다음에 또 할 거니?

"어머님, 민혁이가 머리가 아프대요. 지금 상담실에 앉아서 쉬고 있어요. 수업하기 힘들다네요."

민혁이가 다니는 영어학원 선생님이다. 일주일에 두 번가는 영어학원인데, 그 달 들어서 이런 전화가 벌써 세 번째였다.


민혁이의 하굣길은 늘 친구들과 함께였고, 우리 집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했다.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들어왔다. 다들 인사를 하고, 책가방을 내던지고는 일사불란하게 핸드폰을 꺼낸다. 말 따위는 필요 없다. 동시에 접속을 하고 게임모드에 돌입하신다.

"야! 들어와!"

"아우 야! 거기서 그러면 안돼!"

"아휴. 제대로 하라고! 뭐 하는 거야!"

간간이 이어지는 탄식과  들려오는 고함소리. 싸우는 거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아리송한 대화들. 방으로 뛰어들어가 다툼을 중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보면 갑자기 터져 나오는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희한한 아들내미들의 세상이다. 게임하면서 오가는 대화는 서로 맘에 담아 두는 것 같지도 않고, 지들끼리는 아무 의미 없이 내지르는 감탄사와도 같은 것이지 싶다. 듣는 제삼자만 섬뜩하다. 다들 다니는 학원이 있는지라 게임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게임을 하다가도 학원시간이 되면 내게 인사를 하고, 올 때처럼 우르르 몰려나간다.


학원에서 전화가 온 그날도 그랬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한껏 즐겁게 게임을 하던 아이가 영어학원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기 시작하면서부터  머리가 조금 아프단다. 열도 없고,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아 학원에 보냈더니, 수업하다가 선생님께 머리가 아프다고 읍소하며 엄마한테 전화해달라고 했단다.


첫 번째와 두 번째까지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달음에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갔었다. 근데 이게 웬걸. 집에 오더니 완전 쌩쌩해져서 뒹굴뒹굴거리며 TV도 보고, 게임도 신나게 하는 게 아닌가! 그 아프다는 애가 밥도 엄청 잘 먹었다.

아들이 아프지 않은 건 다행이었지만 왠지 당한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공부하기 싫어 꾀병을 부린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

하지만 어쩌겠는가. 학원에선 진짜로 아팠다는데.  애써 내 마음을 다독여왔는데, 세 번째 전화를 받고 나선 나도 폭발해버렸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의 잔소리 폭탄이 터져버렸다.

"너 도대체가 어떻게 된 애야. 왜 학원만 가면 머리가 아프냐고!"

"진짜 아팠어."

"진짜 아픈 애면  학교 다녀와서 그렇게 신나게 게임 못했지! 진짜 아픈 애였으면 그렇게 놀지도 못한다고! 너 솔직히 말해봐! 학원이 가기 싫어서 그런 거지?"

"아니야. 진짜 아팠다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너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 많이 안 다니는 거 알고 있지? 어릴 때부터 공부 스트레스받게 하는 거 싫어서 최대한  놀 시간 많이 확보해주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틈나면 밖에 나가 놀게 하고! 그 대신 영어는 짧은 순간에 익힐 수 있는 과목이 아니니까,  영어학원만큼은 꼭 다니기로 약속했잖아! 근데 이게 뭐야!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야! 너 이렇게 할 일 제대로 안 하고 뺀질거리라고 엄마가 가르쳤어? 성실이 가장 기본이라고 몇 번을 얘기해야 돼! 자기 할 일도 제대로 안 하고 놀 권리만 주장할 거면 그런 거 용납해주는 집 찾아서 나가 살아! 우리 집에선 그런 생활 절대 안 돼!"

민혁이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마음속의 말들을 여과 없이 내뱉는 사이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집에 올라가 있어! 이따 다시 얘기해."


민혁이를 지하주차장에 내려주고는 일을 하러 가는 길, 운전하는 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화 누그러뜨리고 조금 더 부드럽게 얘기할걸.' 후회도 되고, 사이드미러를 통해 공동현관문으로  들어가는 민혁이를 지켜보았음에도 집에 잘 들어갔는지 걱정도 되었다.


민서한테 전화를 걸었다.

"오빠 들어왔어?"

"아니. 오빠 안 왔는데?"

지하주차장에  내려주고도 10여분이 지났는데, 도대체 집에 안 들어가고 어딜 갔단 말인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음이 들리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는데, 이런. 울고 있다.

"민혁. 지금 어디야? 집에 왜 안 들어갔어?"

"으허어어엉...엄마가...흑흑...집...나가랬잖아."

아이쿠야. 자기 할 일 제대로 안 하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할 거면 그렇게 해주는 집 가서 살랬더니, 그 말에 우리 아들 서러움이 폭발했나 보다.

"엄마가 진짜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잖아! 엄마가 너 진짜 집 나가라고, 너 미우니까 안 보고 싶다고 얘기한 게 아니란 거 모르겠어? 빨리 들어가! 너 지금 어디야?"

한참을 대답 없이 홀짝거리면서 애태우던 민혁이가 입을 뗀다.

"놀이터."

팽팽하게 조여져 있던 신경줄이 탁 늘어진다.

놀이터... 우리 동 바로 앞 놀이터...

참 멀리도 가출하셨다. 우리 아들.


딸아이와의 비밀스러운 통신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있단다. 감히 문을 열 용기가 없는 민서가 문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 보니 훌쩍이는 소리, 코푸는 소리가 들린단다. 서러움이 계속 아들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하던 일을 급히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들과 마주 앉았다.

"민혁아. 엄마가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말을 심하게 했어. 미안해. 엄마는 네가 진짜로 집 나가길 원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야. 엄마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엄마 생각에 네가 잘못한 행동을 한 것 같아서 바로잡았음 해서 한말인데 표현이 과격했네. 근데 우리 아들도 자신의 행동을 좀 되돌아봤음 해. 사람 마음은 누구나 똑같아. 누구든 한없이 놀고만 싶고, 편하게 있고 싶을 거야. 엄마도 마찬가지구. 근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참고 묵묵히 해나가야 할 일도 있는 거야. 민혁이  이제 다 컸으니 엄마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민혁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아들이 울고, 내 마음도 울었다.


초등학교 4학년, 우리 아들의 첫 가출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우리 아들에게 잠시 잠깐의 안식처가 되어준 놀이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들! 가출  할 거면 다음번에도 놀이터로 부탁해!


그로부터 한 달 후 아들의 영어학원 다니기는 중단되었다. 아이가 스트레스받아하는 듯해 내가 한발 물러섰다.  한 세 달 정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는데, 올초 코로나 사태가 터져 영어학원 다니는 것을 미루다 보니 벌써 10개월이나 지났다. 원래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았던 터라 영어학원까지 안 가니 아시간이 많이 남아도신다. 매일을 신나게 노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아이들의 노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싱그럽다. 그렇다고 학습을 아예 등한시할 순 없는 노릇이라 이 둘을 조화시키는 게 가장 어려운 부모역할이지 싶다. 부모가 강요해서 하는 학습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조언을 많이 고민해봐야겠다. 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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