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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게 있으면 두려워진다

by 최물결

“넌 지킬 게 없잖아. 난 생각만 해도 끔찍해 우리 아인이가 눈에 밟혀서 병원도 못 갈 거 같아”


수술 전 휴대폰 너머로 S가 담담하게 말했다.


친구 S의 말대로 나는 지킬 게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아니면 괜찮은 척하는 게 버릇처럼 굳어진 것일까.


수술을 한다 말했을 때 제일 먼저 걱정해 주던 친구 S. 그녀는 결혼하고 세 살 남짓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찾아온 아픔들이 지나갈 때마다 묵묵히 나를 위로해 줬다. 그런데 지킬 게 없는 게 낫다니. 그 말은 책임질 것들이 없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는 말과 같았다.


십여 년간을 함께 했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넌 후 몸은 편해졌으나 마음은 공허했다. 바람 빠져 조그라 든 풍선이 꼭 내 마음의 크기 같다.


입원 수속을 마친 후 6인실 병동으로 향했다. 입, 퇴원은 아빠가 보호자로 동행해 줬는데 왠지 불편했다. 보호자, 보호자 연락처라는 항목이 없었으면 아빠를 부르지도 않았을 텐데…….


아빠한테는 가슴 조직을 떼어내서 수술적으로 검사하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직 암인지 아닌지 모르니. 내일부로 내 병변 부위가 어떤지 확실해지면 뭐든 되겠지.




수술 당일 유방센터에서 한 번 더 검사가 시작됐다. 가슴을 세게 누른 채 석회화된 부분을 보며 와이어로 표시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다리 힘이 풀리며 숨쉬기가 힘들었다. 머리가 핑 돌며 비틀거리는 나를 간호사 선생님들이 부축했다.


고개를 돌리고 있자 긴 바늘이 가슴 사이를 관통해 들어왔다. 바늘보다 기계에 눌린, 내 가슴이 더 아프다.


수술적 검사라지만 수술은 수술인가 보다. 이동식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사람들의 말 소리, 바쁜걸음 소리가 지나가고 차가운 수술대기방에 도착했다.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수술하는 부위를 확인한 후 수술에 들어갔다.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혹여라도 잘 못된다면 후회할 생각도 없었다. 할머니, 엄마, 반려견 모두 있었더라면 내 마음가짐이 달랐을까?


수술 후 회복실에서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는 ‘암’선고를 받고 병원 가기 전날까지 집을 치웠다. 밥이며 국이며 챙겨 먹을거리가 없으면 컵밥이라고 먹으라고 말했다. 치우면 금방 쌓인다고 청소한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엄마는 아빠, 나, 반려견 모두를 걱정했다. 얼마나 그 마음이 무거웠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복통에 설사가 와도 큰 병은 아니겠지 싶어 미루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차라리 책임질 누구 하나 없는 게 다행인지도 몰라’ 집에 노견 혼자 있었으면 맡길 곳, 약 체크, 밥 체크 신경 쓸게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이 왜 이럴까.


다 괜찮은 척, 아니 괜찮은 줄 알았다. 사실 나는 괜찮고 싶었던 것 같다. 병실 속 칸칸이 닫힌 커튼 사이로 적막함이 흘렀다.


“가족력이 있다고 했나요?”

“네”


저녁 회진, 의사선생님이 내게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난소암이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딱히 내 대답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병원 입원 둘째 날 밤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가족력을 되물은 이유는 뭘까? 내가 정말 암인가?


휴대폰을 들고, 수술적 조직 검사가 암이 아니었던 후기를 찾는다. 아무 일도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 지킬 게 없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무거운 온기가 병실을 에워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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