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하고 모호한 날들이 계속됐다. 나는 병이 아니라 불안감과 싸우고 있었다. 추적검사를 할 때마다 결과는 같았다.
“이전과 같습니다.”
“악성이라면 다른 부위에 자랄 수 있으니 그때 다시 위치를 확인해보죠.”
지금은 위치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의사는 아직 유방 속 석회는 그대로지만 악성이 맞다면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생각도 없었고 겁도 나지 않았다. ‘3개월 후에 다시 찍는다더라’라는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허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내 안의 불안은 자라나고 있었다. 멀쩡한 내 몸이 이상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딘가 불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유방암 이야기’라는 유방암환자 카페에 들어가 정보를 찾아야 하나 망설였다. 그러나 카페에 가입하면 내가 암 환자가 될 것만 같아 창을 닫았다.
인터넷 속 흩어진 정보들 사이 블로그와 후기 등을 검색했다. 어디에도 나랑 비슷한 케이스는 없었다. 당시에 난 나를 많이 원망했다. ‘왜 나는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지?’ 남들은 쉽게끝내는 검사들을 난 왜 못할까. 검색이 계속되며 생각의 몸집도 커졌다. 유방외과에 대한 잡다한 지식도 늘어갔다.
조용하지만 무섭게, 가슴 깊숙이 내 안의 불안이 자라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암 환자’의 후기를 검색하고 있었다. ‘조직검사를 했는데 암이래‘ ’뒤늦게 발견해 기수가 높아졌데.'
매일 새벽 검색창에 같은 키워드를 검색했했다.
’미세석회화 악성 확률‘, ’미세석회화 수술적 조직검사‘ 타인의 이야기에 안심하려다 또 다른 사람의 고백에 덜컥 겁이났다. 정보가 위로가 되지 않을 때, 검색은 독이 됐다.
추적검사를 하던 중 오랜 시간 함께한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언젠가는 갈 줄 알았지만 보내고 나니 주위가 텅 비었다.헛헛하고 허무했다. 손에쥐고 있던 모래성이 다 어그러진 느낌이었다. ‘이제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 나지막하게 혼자 속삭였다.
아픈 노견을 간병하던 시기, 건강해야 아이를 돌볼 수 있으니 억지로라도 몸을 챙겼다. 그런데 이제 소중히 지켜야 될 존재가 사라지니 자조차 나를 놓아버릴 것 같았다. 일상을 보내면서도 반려견과의 추억이 떠올라 훌쩍였다. 같이 쓰던 배겟잎에서 더이상 냄새가 안나 또 울음을 훔쳤다.
그 무렵 유방 미세석회화가 다른 부위에 또 생겼다. 안 좋은 건 생겨났는데 의사는 위치를 가늠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쳐있던 나는 용기를 내 의사에게 말했다.
“너무 불안해요. 이러다 못버틸 것 같아요 방법을 제시해 주세요”
선생님은 Mri검사를 제안했다. 병변이 악성이면 Mri에서 나타날 것이고, 위치도 정확히 찾을 수 있을거라 말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던 석회화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초음파실 고참 선생님이 어려운 수학문제를 푼 것처럼 환히 웃었다. 위치를 찾은게 기뻐할 일은 아니지만...... Mri를 찍으며 제발 뭐라
도 보이지 말아라, 눈치 챙겨라라고 마음속에서 소리쳤다.
“MRIi상 보이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이거...바로 검사 못하겠는데, 수술하셔야 돼요”
수술적 조직검사.
조직검사를 하려면 수술을 잡아야했다. 미세석회화가 매우 작아서 총처럼 바늘로 쏘는 검사는 못한다고. 나는 가장 빠른 날짜를 골라 예약했다.
석회가 암일 수도 있다는 말 앞에서 또 한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암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무서웠다.
사실은 지금 이 순간 누군가에게 괜찮다, 걱정하지 말라는 위로를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었다. 외할머니도, 반려견도…….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왜 내게 있는 것들은 점점 멀어져만 갈까. 병원문 사이 저녁놀이 세게 비췄다. 바람이 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