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아닐수도, 병일수도 있다는 말 앞에서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22년 12월 일 때문에 미뤘던 건강검진을 받았다. 당시 다니던 회사의 복지 혜택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신청했다. 검진날 위, 대장 내시경을 해야 했기에 전날 밤부터 속을 깨끗하게 비웠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소변검사 등 건강검진센터에서 기본적인 항목을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이후, 한 달 남짓 결과를 잊고 지냈다. 회사는 점점 바빠졌다. 자체 제작 브랜드 개발도 해야하고, 그에 따른 설문조사, 오픈 기념 이벤트 등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 날 결과지를 보는 내 손끝은 담담했다. ‘용종은 제거했으나 선종이고, 몸무게는 약간 과 체중이라 콜레스테롤 때문에 빼야하고…….’ 내용을 따라가던 중 내 눈이 멈춘 것은 예상치 못한 문장이었다.
“유방에 미세석회화 소견이 있으니 정밀검사를 요합니다”
‘미세석회화? 그게 뭐지?’ 처음듣는 생소한 단어가 머릿속을 둥둥 맴돌았다. 순간 안 좋은건가? 치료를 받아야 하나?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자세한 내용은 병원에 방문해 들으라고 했다. 백발이 성성한 의사 선생님은 유방 엑스레이에서 석회가 발견됐다고 했다. 석회는 여성 누구나 있으며, 양성인지 악성인지는 석회를 확대 촬영을 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검진 병원에는 촬영 기계가 없어 대학병원을 가야 했다.
혹시 모르니 유방 초음파도 해보자고 했다.초음파실에서 가슴에 젤을 바르고 기계를 문지르자, 담당 선생님이 자꾸만 멈추며 화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괜히 무서웠다. 내 가슴에 여러개의 혹도 있었다. 아주 작은 샤프심 같은 크기라고 했고 엄청 문제될 건 아니라고 들었다.
“의뢰서를 하나 써 줄까요? 확인해 보실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덤덤하게 말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말 뒷면에 내 표정이 읽힌거 같았다. 굉장히 찜찜했다. 괜찮을거야 보다 혹시나 하는 걱정, 두려움이 뒤엉켰다.
엄마가 난소암으로 돌아가신 후, 병원에서 가족력과 유전질환을 기입하는 칸에 쓸 내용이 생겼다. 그럴때마다 병원에서는 가족력이 있으므로 여성질환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확히는 “엄마도 그랬으니까 너도 조심해야 해”라는 말이 점점 무겁게 다가왔다. 정확히 말하면 무서웠다.
만약 죽게 된다면 병으로는 가기 싫었다.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잊혀지는 삶은 끔찍했다. 검사소견 하나로 내 가슴속에는 조용한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애매한, 흐릿한 의심하나 말이다. 내 오른쪽 가슴 어딘가에 뭔가가 있다는 말. 그게 병이 아닐수도 있고, 병일수도 있다는 말이 참 묘했다. 나를 환자도 아니고 정상인도 아닌 그 어딘가 쯤으로 분류하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나는 가슴에 만져지는 몽우리도 통증도 없었다. 병원에서 확실한 어조로 ‘양성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는 회사 근처 대학병원 유방외과를 예약했다. 예약 대기 시간은 한 달에서 두 달 남짓. 빠른 듯 느린 그 시간은 회사일로 금세 흘러갔다. 바쁜 일상 때문에 잠시 잊고 살 수 있었지만 밤이 되면 혹은 멍하니 있을 때면 검사결과가 떠올랐다. 회사 동료 중 한 명도 미세석회화로 검사를 받았고, 모양이 좋지 않아 총조직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결과는 양성이었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괜찮다는 동료의 말에 별 것 아니겠지, 괜찮을거야를 되뇌었다.
회사를 다니며 나는 양성인지 악성인지 모를 녀석과 싸워야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3차 대학병원에 갈 수 있었다.선생님은 가져온 결과지를 보더니, 다시 한번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초음파와 유방확대 촬영도 함께 진행됐다. 투명한 기계 사이에 가슴을 넣고 위에서, 옆에서 눌러가며 숨을 참아야 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꼬집는 것과 다르게 온 가슴을 쥐어짜듯 누르는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이제라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 뿐이었다.
대학병원은 검사를 한 뒤 바로 결과를 말해주지 않았다. 다음 재진일이야 돼야 상태를 알 수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찼다.
의사 선생님은 석회화 확대 촬영물을 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따지자면 모양이 썩 좋지 않다고 했다. 조직검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보통은 마취크림을 바르고 총처럼 생긴 기다란 바늘로 의심되는 부위의 조직을 채취한다. 하지만 나는 현재 체취할 수 없다고 했다.
정확히는 위치를 확인 해야 조직검사를 할 수 있는데 미세석회가 너무 작아 가늠이 안 된단다. 의사의 이 말을 이해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정확히는 내 상태를 정확히는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애매하다’ ‘알 수 없다’ ‘좀 더 지나봐야 안다’ 등 불명확한 단어들과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주해야 했다.아프지도 않았고, 만져지는 것도 없었고, 나는 너무나 멀쩡했다. 3개월, 6개월 1년,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흐릿한 의심과 조용한 불안함 함께 살았다. ‘별일 아닐 거야’라고 되뇌면서도 말 끝엔 항상 물음표 하나가 따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