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왜 나일까? 나여야 했을까? 암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단계를 지나도 궁금했다. 병명 하나를 받아 든 순간부터 답은 명확하게 나오지 않았으니까.
나쁜 습관? 스트레스? 아니면 유전인가? 끝없이 이유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이유를 찾는 마음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는 걸 나는 알았다. 유전이라면 부모님을 원망할 것이고 스트레스라면 회사를 탓할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냈다고 믿었는데 한순간 찾아온 병은 나를 무너뜨렸다. 드라마에 나오는 암이란 단어, 짧은 머리, 병실 모든 게 불편했다. 아파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떤 심정인지 모를 것 같은 배우의 연기가 달갑지 않았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의문을 품다 보니 마음이 탁해졌다. 비난을 향한 화살은 내게 다시 돌아왔다. 밥을 먹어도 재밌는 영상을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모든 신들을 비롯해 하늘까지 원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지난 오 년에서 십 년 동안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었나?
나는 야근에 절어 살았고, 빈속에 술을 마셨다. 코로나 시기 이직을 했다. 재택근무를 했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나 압박과 불안에 시달렸다.
일 때문에 밥이 안 넘어갈 때면 자주 체했다. 무언가에 쫓기듯 항상 바빴고 치여살았다. 늘 잠이 부족했다. 나를 깎아내리고 있던 행동들을 아프고 나서 생각해 본다. 그때는 몰랐지만 내 몸은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걸까. 내 안에 쌓여있던 피로를 마주 보았다. 나는 무얼 위해 살아왔는가. 나를 향해 묻는 물음표는 곧 살아가는 방향에 대한 질문이었다.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뭘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왜 아팠는지’보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기로 했다. 빠르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나는 밥도 차도 커피도 빨리 먹는다. 점심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려면 빨리 먹고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나으니까. 출퇴근 버스 안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강의를 듣기도 했다. 빠른 템포를 잠시 멈추기로 했다. 스스로에게 주는 강제 휴업령이다.
회복의 속도를 내 몸의 리듬에 맡기기로 했다.
일 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병원 스케줄을 제외하면 무계획으로 지냈다. 예전엔 하루를 꽉 채우지 않으면 불안했다. 티브이를 보고 싶으면 보고 나가고 싶으면 외출했다. 해야 된다는 강박을 지우니 한결 편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편해졌다.
하루 한 번 강아지와 산책하기로 약속했다. 첫째 강아지가 떠난 후 일 년이 되는 시점에 유기견을 입양했다. 강아지를 다시 데려오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녀석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했다. 하루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반려견 자두와 걷는다. 걷는 시간만큼은 걱정이 멈춘다. 강아지와 나 속도를 맞추며 호흡과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과 서사를 글로 기록한다. 감정을 숨기지 말고 적는 연습을 해본다.
내가 그때는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뭘 느꼈는지. 지나갔지만 떠올려본다. 수술하고 치료받고 일 년 만에 다시 글을 썼다. 잘 쓰려는 생각을 내려놨다. 그저 살아낸 순간들을 기록할 뿐이다. 작고 사소한 일상이 루틴이 되고 편해지고 있다. 아침에 집에서 내려먹는 커피가 좋고 탄산수가 시원하다.
이제 나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생각한다. 나를 아프게 한 것도 나를 일으키는 것도 결국 내 마음이었다.
자두와 걷는 산책길 바람이 내 등을 천천히 밀어준다. 나도 나아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