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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알려준 건강 의식

'띵동' 자로 잰 듯 정확한 약 시간

by 최물결


방사선 치료가 끝났다. 매일 출근하듯 다니던 병원 일정이 끝났다. 체력적으로 피곤하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내겐 매일 먹는 약이 있다. 호르몬을 억제해 유방암세포를 아예 못 오게 차단하는 약이다. 호르몬 약이라고도 불리는 타목시펜. 앞으로 오 년을 더 먹어야 한다.


하루에 한 번, 작은 약 한 알이 나의 시간표에 추가됐다. 거부감보다는 건강해지는 의식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더 이상 암이랑은 굿바이야. 몸을 지키는 연장선으로 먹자, 스스로 주문을 건다. 호르몬 약과 함께 챙겨 먹고 있는 비타민B와 C도 입에 털어 넣는다.


약을 먹으면서 몸이 내는 신호에 집중한다. 무심한 듯 흘려보냈던 변화에 귀를 기울인다. 내 몸은 내가 챙겨야 하니까. 타목시펜을 먹는 동안 잠에서 두세 번 깼다. 잠이 안 와서라기보다는 소변이 마려웠다. 이주에서 삼주 정도 지나니 소변 마려운 증상은 사라졌는데 관절이 뻣뻣하다. 원래 엉덩이 쪽이 시큰했었는데 더 아프다. 괜히 주먹을 쥐었다 편다. 중지 검지를 접었다 필 때마다 욱신댄다. 정말 아픈 게 맞는지 확인차 손을 움직인다. 이게 바로 호르몬 약의 부작용인가?


인터넷 기사에서나 보던 갱년기증 상도 생겼다. 금방 추웠다가 더워진다. 에어컨을 켜면 춥고 끄면 땀을 흘린다. 몸이 혼자 기후변화를 겪는 듯하다. 들쭉날쭉한 컨디션에 적응하느라 애를 쓴다.

오후 3시 살기 위해 약을 삼킨다. 내 안에 있는 암세포의 가능성을 밀어내기 위해. 혼자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다시 아프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어’


방어적 태도로 삼킨 약이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약은 내게 몸을 돌보는 법을 알려줬다. 건강해지기 위해 영양제를 챙기기 시작했다. 타목시펜과 함께 먹으면 상충되는 약은 제외하고 구성을 짜 본다. 비타민B 비타민C 비타민D 최근에는 마그네슘도 추가했다. 아프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 내 몸은 오래전부터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걸까.


몸이 보낸 신호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피곤하면 눕거나 일찍 잠든다. 햇살 좋은 날이면 일부러 밖으로 나간다. 불편한 변화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병원에 간다. 불안함에 휩싸여 발만 동동 구르기보다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는 편이 낫다. 무시해서 생긴 병이기에 무시하지 않기로 한다.




매일 하는 루틴 중 거의 빼먹지 않는 건 산책이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하루 삼십 분은 꼭 집 앞 공원까지 걷는다. 눈에 보이게 살 빠진 느낌은 없다. 무엇보다 욕심이 사라졌다. 옷 하나를 사두고 맞을 때까지 빼는 무식한 방법 이제 하지 않는다. 그냥 평균 몸무게를 유지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줄이는 게 목표다. 수술 후 9개월 차 콜레스테롤 지수가 줄었다. 수술 전 254를 찍었는데 수치가 높다고 줄여야 한다고 했었다.


더 이상 약을 먹기 싫었다. 열심히 노력했다고 볼 순 없지만 해야 하기에 걸었다. 강아지와 함께 걸으며 나쁜 생각보다는 좋은 생각만 머릿속에 담았다. 그에 맞게 몸이 반응했는지 콜레스테롤이 정상수치로 들어왔다. 신기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싸우고 있다. 수술하고 방사선을 했다고 암이 안 온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싸움에 겁내지 않기로 한다. 내가 나를 돌보기로 결심했으니까.

건강을 지키는 건 의무가 아니라 내 삶을 존중하는 방식이니까. 나는 내 몸에 좀 더 다정해지기로 했다. 띵동 약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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