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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지우는 암, 흔적으로 남는 나

치료라고 부르는 '통과의례'

by 최물결

방사선 치료를 처음 안내받던 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상의를 오픈했다. 오른쪽 가슴 위쪽에 칼자국이 선명했다. 민망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했다. 여기저기 내보인 가슴 뭔 쓸 때가 있다고. 모의 방사 설계를 받고, 일주일 남짓 기다렸다.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님께서도 가슴을 확인하셨다. 앞으로 열여섯 번 주말을 제외한 평일 방사선을 받으러 가야 한다.


왠지 억울했다. 상피내암인데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하다니.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단다. 방사선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유방 내 미세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죽이기 위해서다.


병원 지하 1층, 방사선 종양학과. 가운을 입고 예약시간에 맞춰 대기한다. 이제껏 어떤 약속도 이렇게 무겁고 정확하게 기록된 적이 없었다. 삼 주 동안 날짜와 시간이 적힌 조그마한 종이, 그것이 내 일상의 중심이 됐다.

방사선실 선생님이 나긋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호명한다.


치료실 문이 닫히고 나는 차가운 침대에 눕는다. 위에서 쏟아지는 강한 조명 아래 숨소리가 조심스러워진다. 침대에 오르면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다. 머리 위에서 기계가 윙윙 소리를 내며 회전하고, 쇳소리 같은 기계음이 낮게 울린다.


“숨 참으세요”
기계음보다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고 조심스레 호흡을 멈춘다. ‘이제 진짜 마지막 치료야’를 마음속으로 되뇐다. 손을 가만히 옆으로 모아놓고 힘을 빼려고 하는데 긴장한다. 고요한 긴장 속에 십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끝났다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몸이 따뜻해지는 것도 아픈 것도 아닌데 희미하게 느껴지는 빛이 몸속 어딘가를 통과했다.

눈은 감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장을 바라보며 아무 일도 없기를 빛이 잘 지나가기를 빈다.

참으로 낯설다. 나를 통과해 지나간 무언가가 무엇을 지우고 있는 걸까. 치료를 받으며 가끔은 불안하고, 때론 안심이 됐다. 진짜 치료의 마지막 관례가 된 것 같다.


“숨 쉬세요”


선생님의 말소리에 작게 숨을 들이쉰다.


딱딱했던 근육들이 금방 플린 것 같다. 눈가에 땀이 배어있다.

문이 열리고 치료가 끝났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나는 매일 조용히 버티는 법을 배웠다.


횟수가 증가할수록 피로가 누적됐다. 가슴 정확히는 오른쪽 쇄골 아래부터 유방 절제 부위까지. 이제는 지도처럼 경계를 가진 피부가 돼있었다. 몸 안속 깊숙한 곳에 쇳덩이가 하나씩 쌓이는 기분이었다. 화상은 아니지만 같은 부위에 빛을 쐬다 보면 검게 그을린다.


좋다는 미스트, 로션, 보습크림을 발랐다. 좋은 제품으로도 그을린 가슴은 가려지지 않는다. 육체는 지치고 마음은 버텼다. 한번 다리가 풀려 넘어진 적이 있는데 세상은 마음만으론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병원 본관에서 별관까지 짧은 거리 전기 카트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이 타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허나 나도 환자 아닌가. 몸이 축 늘어질 때면. 타이밍이 맞을 때면 전기 카트를 찼는데 운전하는 여사님이 너무 멋있다. 내가 고개만 돌려도 선글라스 사이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가슴은 타들어갔지만 마음은 따뜻해졌다.


검은 그을음은 시간이 지나 껍데기처럼 변했다. 단단한 벽처럼 세포 주위를 둘러싸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껍질도 반년이 지나니 벗겨졌다. 방사선을 받으며 알게 됐다. 치료는 세포를 없애는 과정이 아니라 내 몸을, 삶을 상처를 끝까지 믿는 훈련이라고. 빛이 지나간 자리가 타들어갈 듯 아팠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매일의 나를 묵묵히 걸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피어날 생명을 조금씩 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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