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라일락 Oct 06. 2020

엄마의 바다는 얼지 않는다.

겨울바다는 꼭 우리 엄마를 닮았어.

  어릴때는 바닷물을 만지는 감촉이 좋았다. 파도가 움직일 때 마다 내 몸이 반응하는 있는 순간은 인어공주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하염없이 쭉 펼쳐진 바다를 그냥 바라보든게 좋다. 굳이 손에 물을 묻히지 않아도 그냥 가슴이 빵 트히는 느낌이랄까. 작년 겨울 퇴사 여행이랍시고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 바닷가를 갔었다. 나는 호텔에서 광안리까지 꽤 오래 걸리는 기간동안 걷고 또 걸으면서 보이는 바다를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백사장 앞에서 한번 담고, 부산 광안리 바닷가 앞 카페 테라스에서 또 한번 더 담았다. 11월이라 추워서 겉옷을 챙겨가긴 했는데……. 서울이랑은 상대적으로 바람이 조금 포근한 것 같았다. 

  겨울인데도 나폴나폴, 양치질을 하듯이 흰 포말이 거품을 내뿜으며 내게 다가왔다. 겨울 바다를 보니 근처 호수에서 썰매타던 생각이 났다. 문득 나는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바다는 왜 얼지 않을까”

  궁금한 건 뭐든 검색하는 버릇이 있는 내가 초록 검색창에 질문 키워드를 입력했다. 바다가 얼지 않는 이유 

  바다는 봄,여름,가을 등 태양열을 받아 따ᆞ뜻해진 열을 오랫동안 품고 있단다.  또 깨끗하기만 하면 마실 수 있는 민물과 달리 물에 염분이 녹아 있다고 한다. 또 파도가 항상 일고 있는 것도 어느 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한다.     



  “나는 한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쉬고싶어”

바다를 좋아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소화가 안 된다는 엄마는 살이 쪽 빠져서 내가 예전에 입던 25인치 청바지를 본인 바지처럼 입고 있었다. 사흘만이다. 사흘만에 터벅터벅 참고 참다가 병원을 가려고 대문을 열고 나간다.  엄마는 할머니 때문에 십육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회사를 그만두면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꺄르르 소녀처럼 웃던 엄마가 떠올랐다. 

  이번년도 7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생일이 지나고 며칠 후였지. 할머니가 119에 실려 가셨다. 할머니는 나좀 살려 달라고 꺽꺽 소리를 내고 아픈 허리를 움켜 쥐셨다. 엄마가 대답했다.

  “살려줄게 기다려” 

  할머니 허리가 갑자기 아팠던 이유는 다발성 압박골절이 와서라고 한다. 금이 간것인데 급하게 수술이 필요했다. 수술을 받고 돌아온 할머니는 겉으로는 괜찮아 진 듯 싶었으나 일어서는게 쉽지 않았다. 엉덩이를 들고 반동으로 일어나던 할머니가 아기처럼 기어 나와 일어서려고 애쓴다. 하지만 한쪽으로 곧 몸이 기울었다. 그 모습이 줄위를 맨 발로 걷는 사람마냥 위태롭게 보였다. 

  몇 주 동안 입원을 하며 할머니 간병 때문에 병원에만 있었던 엄마. 새벽의 어느날 나와 엄마가 마주앉아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 한다. 

  “병원에서 수건이랑 시트는 하루에 한번 갈 수 있다는데, 간병인이 오줌을 쌀 때 까지 최대한 냅두고 쓱 갈더라.”

“에어컨 옆이 침대인데 바람이 세서 기침을 하는데도 그냥 두더라니까”

엄마는 에어콘 옆 할머니가 기침을 한다고 병원 관계자에게 말을 하고 나서야 그제서야 껐다라고 병원 생활에 대해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병원에서 머물렀던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의 눈 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뜨거워 많은 기억들이 끓어오르는지 엄마가 내뱉은 음절들이 흐물흐물해져 있었다. 잠깐 온 사람은 제 부모는 안 보고 간병인에게 대충 안부만 묻고 마실 것만 사주고 갔다고. 자식이 부모에게 그럴 수 있냐라는 말을 나는 겨우 해석했다.  활화산처럼  뜨거움이 엄마의 단전부터 솟아오르고 있었다.


  할머니에겐 많은 수식어들이 달려 있었다. 매일 거동이 불편한, 밤낮 구분을 잘 못하는, 한마디로 치매끼가 있는……. 할머니를 돌본다는 건 많이 아주 많이 힘든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십번씩 기저귀를 빼 놓는턱에 어떤 날은 어제 보송보송한 새 이불을 갈았는데 다음날 실례를 해버린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언성을 높일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기저귀를 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몇 시간도 안되서 기저귀를 빼고는 이불에 실례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묵묵히 기저귀를 갈던 엄마가 토하듯 울었다. 그만좀 힘들게 해. 나도 힘들어라고 하던 엄마……. 항상 할머니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주고 오늘은 무슨요일인지, 지금은 몇시인지, 할머니 이름은 생일은 뭔지 묻던 엄마……. 할머니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게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장재순씨 노래해봐유 오늘은 뭐할 거야?” 라고 묻던 엄마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시번씩 기저귀를 빼 놓질 않나, 기어서 위험하게 화장실 변기까지 와서 서려고 하질 않나. 할머니의   나날들은 나 조차도 살 얼음판을 걷는 것만 같았다. 한 번은 쿵쾅거리며 박스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 내 방에서 할머니방짜기 한걸음에 달려간 적이 있었다. 할머니 말로는 옷을 찾으려 하는데 없었다며 여기저기 물건을 건드렸다고 하는데, 방에 쌓아둔 상자하나를 밀게 된 것이다. 

“아이로 변한 할머니 때문에 몰래 울었다”

  엄마가 우니 내가 소리를 지르며 그 말을 막았다.

  “어이구 왜 울어 그러지마 엄마답지 않게 왜그래”

 사실 이 말속에는 엄마가 울면 나도 많이 아프다고. 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 할머니 때문에 힘든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이 안쓰러워 울음을 참으려는 이기적인 말이기도 했다. 나는 몰래 방문을 닫고와 흐느껴 울었다.

“엄마의 바다에는 염분이 섞여 있다”

  바다에 파도가 쳤다가 다시 잠잠해지듯이. 할머니가 주무시는 그 순간은 아주 평화로운 시간이 되었다. 그래도 중간중간 소변이 마려워 깨는 통에 엄마는 쪽잠을 잤다. 그럴 때면 예민해져 엄마의 감정도 시시때때로 변했다. 어떤 날은 할머니를 이해하며 받아주었다가도 어느날은 잔뜩 날 선 목소리로 힘들다고 사정하기도 한다. 엄마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지 3개월이 지났다. 손에 물이 마를 세 없듯이, 엄마가 품고 있는 바다는 계속 흘러 가고 있었다. 


“시간이 하루라도 멈출 수 있다면 엄마를 쉬게 해 주고 싶다”

엄마의 하루는 바다를 닮았다. 넓은 가슴으로 사계절 내내 뜨거움을 맨 바닥에 숨긴채로, 어떤날은 눈물을 삼키고, 화를 머금고, 힘든 일들을 지층처럼 켜켜이 쌓아둔채 얼지 않고 흘러가는 바다……. 그 파랑 안에는 뭐가 있을까. 

“엄마는 잘 안울어 강하자나가 아니라 아니 울었으면 좋겠다”

엄마도 화내고 울고 짜증낼 수 있으니까. 요새 나는 엄마의 직설적인 감정 날것 그대로가 좋다.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고 아프면 무엇 때문에 아프다고 응석을 부리는 모습이 좋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어릴 때 여행 참 많이 갔지 우리”

엄마 아빠와 갔던 삽시도, 안면도, 부산, 강원도 바닷가들……. 꽤 많이도 갔던 그곳을 앨범 속 사진으로 조우했다. 다시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말에 엄마가  “그런데 갈 수는 있겠냐”라고 대답한다. 내가 작가가 되더라도 혹은 시간적 여유와 금전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면 짧지만 소중한 계획을 세워 가볼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잡히지 않는다.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그 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일까 엄마의 바다는 얼지 않고 오늘도 흐르고 있다. 

이전 26화 서른 살, 리셋하는 나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