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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일락 Jan 15. 2020

서른 살, 리셋하는 나이다?

서른살,2019년 1월의 초입길에서서

“서른 살? 처음에만 그렇지 아무 생각 안 들어 “ 후배의 찡얼거림에 내가 입을 달싹 거리며 대답했다.

정말 서른 넘으면 아무 생각도 안 드냐는 아는 동생의 물음이 왠지 날 비꼬는 것 같았다.

”서른? 서른 넘어가면 다 똑같지 뭐“ 나는 마시던 맥주를 마저 들이키며 말했다. 고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동생 앞에서 떡국의 떡을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은 사람처럼 태연한 척 언니 노릇을 하고 있는 나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코웃음이 났다. 사실 나도 처음 해가 바뀌고 앞자리가 바뀐 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사실 괜찮은 척했지만 서른은 내게 불안했다. 주변에서 물어보는 것은 똑같았다. 이제 서른이기 때문에 그래서? 결혼은 했느냐. 승진은 했느냐 직장에서 몇 년 차냐. 일은 잘 맞느냐. 딱 서른이 됐을 때 물을 수 있는 비슷한 안부들이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한때 나는 내 나이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해야 되는 줄 알고 떠밀리듯이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내 친구 중 누군가는 시대에 편승하듯이 그저 때가 되면 하는 것처럼 하기도 했으니까.




 남들이 할 때쯤 으레 비슷하게 해야 되는 나이……. 친구들은 만나면 언제 결혼하고 싶다   라는 말보다는 해야 하는 나이라서 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다. 우리 나이 때는 이 정도의 돈을 가지고 이 정도의 적금을 들어놔야 살 수 있으니까 등등의 대화, 어쩔 때는 무미건조했고 나는 그 무리들의 대화에 끼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 당시에 나는 서른이었는데, 다른 직군으로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미 완성형이 된 친구들은 커리어가 단단하게 쌓아져 있었다. 대기업 계열회사 과장님, 교수님, 일반 회사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친구들 음 무언가 시작하기에 어정쩡한 나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늦지 않았어? 빨리 시작했어야지 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 아르바이트와 글쓰기 최저임금 수준의 돈을 받으며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녀들과 생각할 수 없는 괴리감이 생겼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게 어딨는가.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서른 살이면 앞자리만 3이지 뒷자리는 아직 0 아닌가. 일의 자리 숫자가 1부터 9까지 갔다면 다시 리셋되는 순간 한 번 더 처음으로 가는 거 아닌가? 그냥 나는 나로 살아가기로 했다. 모두의 보편적인 30대가 아닌 나의 삼십대로 살아가기로. 그래서 다시 0살로 돌아가 리셋되는 것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동백이가 이런 말을 한다.

“저도 원래는 좀 행복을 수능 점수표처럼 생각했어요



남들이 줄 세우는 표를 멍하니 올려다보면서

난 어디쯤인가 난 어디 껴야 되나

올려다보고 또 올려다봐도 답이 없더라고요.


남들 보기에 어떻든 나 보기에만 행복하면 됐죠. 뭐”

이게 정답인 것 같다. 20대 때는 내 점수표가 어디쯤 되나 계산하고 그쪽을 향해서 자꾸만 가려고 했다. 아무리 가도 가지진 않으면서 찾기만 한 셈이다. 목표점을 향해 정확하게 걸어가지도 어딘지도 모른 채 무작정 보기만 했으면서 말이다. 30대가 되니 초연 해지는 힘이 생겼다. 무슨 일이 크게 일어나도 조금은 편안하게 머리를 하늘에 식힐 줄 아는 여유 말이다. 심호흡 한번 하고 편의점에 가서 껌 하나 사서 꾹꾹 단물을 삼킨다. 어색한 나이를 뒤로하고, 사람들의 여러 가지 안부에 침묵한 채 스스로 마음을 다 잡아본다. 29에서 30 0살로 리셋이 되는 순간이다.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니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커피학원에 등록해보려고 한다. 커피는 20살 때부터 배워보고 싶었는데 대학교를 가야 된다는 핑계로 해보지 시도도 하지 못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늦지 않았나? 내가 제일 나이가 많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그 물음들을 묶어서 잠시 쟁여놓고 살아가려고 한다. 일단 한번 해 보자. 사실 직접 해보면 무서운 것이 없다. 사람은 눈을 감고 앞에 있는 물건을 만지면 무서워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만질수록 두려움이 커지는 것이다. 막상 눈으로 확인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어차피 고민할 바에는 직접 가서 부딪히려 한다. 직접 보고 피부로 느껴보자. 서른 살은 아직 움츠려 들 필요가 없다, 이제 막 시작인 찬란한 나이기에. 모두 이 글을 본다면 마음을 리셋시켜보자. 타인의 말에 주눅 들 필요도 없으며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 인생 좌표를 보며 서성일 필요도 없다. 나는 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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