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필카 가게에서 사진기를 구경하며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핸드폰만 들여다봐도 족히 몇천 장은 될 것이다. 심지어 재 작년 사월에는 풍경이 잘 찍힌다는 사과 폰으로 바꿨다. 사과 폰으로 바꾼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보정 어플들이 많이 등장했다. 정확히는 보정, 색감 조정 어플을 그 시기에 알게 된 것이다. 셀카를 찍는데 얼굴에 스티커를 붙여 바로바로 보는 기능이 마냥 신기했다. 안경이나 장신구를 직접 착용한 것처럼 찍을 수 있었다. 나는 한동안 보정 어플에 매료되어 내 얼굴만 몇 천장을 찍어댔다.
방송국에 다니던 시절 친한 동생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친한 벗들과 만나면 인생 샷 하나쯤은 건질 수 있었다. 특히 손재주가 좋고 다재다능한 A에게 인생 샷을 잘 부탁해라고 말하곤 했었다. 두 명의 동생들 중 J는 요새 필름 카메라에 맛이 들렸다. 지금까지 산 필카만 3대였다. 최근 직장을 옮겼는데 첫 월급을 타면 한대를 더 살 거라고 내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만난 목적은 J가 곧 사려고 했던 사진기 파는 곳에 구경을 하러 갈 참이었다. 필름 카메라가 도대체 뭐가 좋을까 생각했던 나. 얼마나 좋은 디지털 스마트 시대에 살고 있는데 보고, 찍고, 즉각 나오고 보정도 되는데 굳이 필름 카메라를 쓸까. 하지만 모든 것들은 다 편견이었다. 각각 사물들이 가진 이름 속에 의미가 있듯이 카메라 또한 그러했다. 내 생각은 필카 가게에 발을 디디는 순간 백팔십도 바뀌어 있었다. 년도 별 혹은 종류별로 일렬종대로 배치된 카메라들. 그리 좁지도 멀지도 않게 일정한 간격을 띠고 진열돼 있었다. 망원경처럼 위에서 들여다보고 찍는 카메라도 있었다. 신기했다. 돋보기, 확대경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앞 사물이 보여 거울을 보며 찍을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필름을 감을 때 나는 명랑한 소리는 와 좋다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여러모로 필카의 매력은 여러 가지였다.
찰칵 그 찰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찰칵 도로록 치익, 시계태엽을 감듯이 찰칵 치익 소리가 19살 낭랑한 목소리의 소녀처럼 명랑하다. 그 소리는 주변으로 곧 흩어진다. 실시간 ASMR을 듣는 것처럼 셔터 소리나 귓바퀴 속으로 쏙 감겨 들어왔다.
직접 찾아서 하는 것과 VS자동으로 맞추는 것
그동안 나는 맞추는 것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길들여져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보정 기능이 바로 되는 스마트폰 속 카메라처럼. 눈앞에 바로 보이니까 수정할 수 있어서 편리했다. 필름 카메라는 조리개 값이며 셔터 값 등 일일이 손으로 만져서 조절을 해야 하니 귀차니즘이 심한 사람이면 많이 번거로울 것이다. 필름 카메라는 기다림 속에서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친구는 아직 초보에서 입문자 사이의 필름 카메라 연습생이다. 우리가 만난 날 모르고 카메라 렌즈 마개를 안 열고 찍는 실수를 범했다. 내가 필름이 아깝다고 하지만 괜찮다고 아무렇지 않게 동생이 말했다. 구도가 조금 흐트러져도 이상하게 현상이 되거나 이전에 찍은 건 설정을 조금 이상하게 해 빛이 번지기도 했다. 또한 스마트폰과 일반 DSLR과 다르게 카메라마다 필름이 들어가기 때문에 필름을 맡기고 찾는 과정이 필요했다.
"과연 잘 나올까"
감독 언니 생일 때 찍었던 사진,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항상 찍고 '보자 보자'를 외치며 난리를 쳤다. 그날도 한창 사진 찍기에 열이 올라 있을 때, J가 사진 맡겨보고 알려줄게 라며 우리의 애간장을 태웠다. 사진은 빛을 담는 과정이라는데 언제 우리의 빛이 나올까. 몇 주 후 J가 보내온 사진에 우리는 형체만 있었다. J는 괜찮아 다음에 더 잘 찍으면 되지라고 쿨하게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필름 카메라 집을 구경하며 '옛날 생각나서 좋다도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수동적인 인생만 살았다'라고. 내게 맞추기보다는 맞춰진 인생, 이미 세팅된 세상(이를테면 회사나 집이라는 곳)에서 당연하듯이 하던 것들에 너무 익숙해졌다고.
카메라가 세상이라면 나는 빛이다. 빛을 담는 것은 세상이지만 만들어 가는 주체는 나다. J는 사진 설정을 이렇게도 저렇게 조절하는 게 좋다고 했다. 찍을 때마다 느낌대로 다르게 나와서라고. A동생은 묵직한 무게감이 좋다고 했다. 필름 카메라를 들 때 느끼는 무게감이 나를 중심에 서 있게 한다고 말이다. 필름 카메라 집에서 한 시간여 동안 사진기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가벼운 미국식 토이 카메라부터 연식이 오래돼 무거운 카메라까지 그래서 더 조작법과 버튼도 많았다. 나도 묵직한 사진기를 얼굴 가까이 대 보았다. 무거운 것을 지탱하는 아귀힘이 내 손에서 솟아올랐다. 필름을 감듯 내 팔이 후들후들 떨린다. dslr과는 다른 묵직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