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사람들 <아날로그 중국> 4
“걱정하지 마. 수레가 산 앞에 이르면 길이 나는 법이요. 배가 다리 어귀에 이르면 자연스레 똑바로 가는 법. 궁하면 통하게 되어있으니까.”
- 위화 <형제>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게 무슨 소리람. 믿지 않습니다. 호스텔에 머무는 여행자 중 100프로가 파키스탄을 가기 위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믿지 않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허나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은 오고 말았지요. 숙소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what? fuck! shit! 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파키스탄은 비자받기 어려운 나라 중 한 곳입니다. 이 당시까지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자국에서 초청장과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비자를 발급받는 것. 이는 파키스탄에 초청장을 발급해줄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5월부터 12월 사이 중국 국경을 통해서 입국할 경우 국경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발급받으려고 했던 방법은 후자였고 제가 국경에 당도하기 단 며칠 전 이 제도가 바뀌어 버린 겁니다. 젠장.)
그러나 우리 여행자들은 그리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 수시로 중앙마당에 모여 각국 여행자 대표 회담을 갖습니다. 여권을 모아 이 여행사 저 여행사의 문을 두드립니다. 각자 인터넷도 뒤져 봅니다. 파키스탄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주인장께도 전화를 드립니다. 이것저것 되는대로 다 해 봅니다. 물론 중간중간 밥도 해서 나눠 먹고 맥주 마시는 것도 잊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파키스탄! 도대체 우리한테 왜 그러냐고!? 갑자기 왜!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님 정말 힐러리가 오기 때문이야? 뭐야?) 추측도 그만. 회담도 그만. 방법이 없음을 알고 다들 세계지도를 핍니다.
보자 보자 어느 길로 가볼까?
하여 누구는 자국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중국 여행으로 마음을 굳히고 누구는 국경을 통해 라오스로 누구는 인도로 누구는 조지아로. 가만 조지아!?
“난 조지아로 가려고. 알아보니 우루무치에서 조지아 가는 비행기가 20만 원 정도 하더라고. 조지아 거쳐 이란으로 넘어갈까 싶어. 같이 갈래?”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는 캐나다인 여행자였습니다.
솔깃합니다. 조지아 라. 카프카즈 산맥 어디쯤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지 낯선 나라입니다. 낯 서니까. 낯설다는 건 설레고 어색하고 조심스럽고 조금 부끄러운 거. 그리고 나는 그런 거 좋아하니까. 당장에 조지아행 비행기 티켓을 끊습니다. 다시 서른 시간쯤 이동해 우루무치로 가야 하지만... 괜찮습니다. 아니, 괜. 찮. 을. 겁. 니. 다. 하하.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든든히 먹자며 되는대로 다 먹기 시작했습니다. 비둘기 고기, 양머리, 양 눈알. 중국에서 파는 음식은 다 먹어보겠다며 살구에 대한 열정을 카쉬카르 시장에서 불태우고 있었죠.
양 머리 고기 같은 경우는 잘 삶아져 있는 양 머리의 가운데를 도끼로 토막 내어 그중 반을 접시에 담아 줍니다. 그런데 나머지는 어떻게 그럭저럭 넘겨도 이 눈알만큼은 좀처럼 손이 가질 않았습니다. 반 토막을 나눠 먹던 친구 페잉과 저는 서로에게 양보하기 시작했죠. 고 단백이란다 니가 먹어라. 아니다, 지금 이것이 필요 한 사람은 바로 너다. 아니다, 먼 길 가는 너야 말로 잘 먹어둬야 한다! 결국 착한 페잉의 마음을 이기지 못한 제가 그것을 입에 넣었을 때 옆에 있던 토니가 말했습니다.
“눈알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먹어요.”
그 순간, 예쁘게 감겨 있던 양의 눈이 생각나 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지요. 뱉기에는 미안하고 입안에 두기에는 슬퍼서 꿀떡 삼켰습니다.
그리고는 큰일을 하나 해낸 것 같은 기분으로 재빨리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습니다.
나를 보고 있던 페잉도, 토니도, 다른 친구들도 다 같이 잔을 들었어요.
이건 포기하고 실패한 자들의 조촐하고 엉뚱한 파티였죠.
그때 알았습니다.
거의 다 왔어도 연이 닿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는 걸. 너무 힘들면 안 해도 된다는 걸. 실패에도 파티가 필요하다는 걸.
글 : 히피
그림 : 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