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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등은 건강했다.

행복했던 순간은 늘 있었다. 그 순간을 잊는 순간, 이미 나도 늙어버렸어

by 신수현

항상 싸우며 갈등 속에서만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북적거리고, 티격태격하며 지냈지만, 저는 힘든 순간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등에 업혔던 기억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언제나 강한 아버지셨지만, 아버지가 힘이 없어지셨을 때 왜 멀리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듭니다. 마치 아버지에게 복수라도 하듯, 아버지가 늙기를 바랐던 제 소원이 이루어졌고, 저는 그 이후의 시간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가족과의 첫 여행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입니다. 동네에서 단체로 여행을 떠났는데, 관광버스를 타고 강원도에서 용인 자연농원(에버랜드)과 민속촌으로 향했습니다. 원래 5인 가족 기준으로 떠나는 여행이었으나, 저희 집은 딸 네 명과 부모님까지 총 여섯 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햇살은 유난히 따가웠습니다. 후텁지근한 공기가 가득한 버스 안에서 언니들과 동생하고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푸른 산과 들판을 보며, 저는 낯선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식사였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비빔밥이 낯설고 먹기 싫었습니다. 투정을 부리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식당 안에서 어머니는 저를 달래느라 애를 쓰셨고, 저는 그 와중에도 반 친구가 저를 쳐다볼까 봐 부끄러워 눈물을 닦았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저는 제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연농원에 도착하자, 눈앞에 거대한 놀이기구들이 펼쳐졌습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88 열차였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단순한 롤러코스터 같았지만, 막상 줄을 서고 보니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발판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레일을 따라 달려가는 열차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오르더니, 어느 순간 정점에서 멈춘 듯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엄청난 속도로 아래로 내리 꽂혔습니다.

“아, 저건 못 타겠다.”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지만, 이미 줄은 제 뒤로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결국 가족들과 함께 열차에 올랐습니다. 안전바가 내려오고, 차가운 철제 레일 위로 열차가 미끄러지듯 움직였습니다. 천천히 올라가는 순간, 저는 숨을 죽였습니다.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하늘아래 대기하는 친구들과 사람들이 점점 멀어졌습니다. 출발할 때부터 눈을 감았습니다. 열차가 멈추는 순간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생각했는데, 곧이어 열차가 미친 듯이 아래로 내달렸습니다. 귀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 저절로 튀어나왔습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몸이 공중에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놀이기구를 다 타고난 후, 저는 휘청이며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그 모습을 반 친구가 보았습니다. 그날 밤, 저는 부끄러움에 베개를 끌어안고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무서운 열차를 타고도 모자라서, 가족들은 귀신의 집에 가기로 했습니다. 검붉은 조명이 어른거리는 입구에서부터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벽에는 희미한 조명이 깜빡였고, 피 묻은 손자국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귀신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으아아아악!” 저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귀신의 집으로 들어온 이상 입구는 닫혀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공포에 질려 눈을 감은 채 한 걸음도 떼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업히라며 등을 내어주셨습니다. 무뚝뚝한 아버지인 줄 알았는데, 우는 저를 토닥이며, '다 왔다 다 왔어'라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눈을 감은 채 아버지의 등에 꼭 붙어 있는 동안, 저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순간이 아버지의 등을 느낄 수 있는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시간은 정확합니다. 어린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고, 어른은 늙어 아이처럼 연약해집니다. 저의 아버지도 그러했습니다. 점점 허리가 굽고, 걸음이 느려지며, 손에 힘이 빠졌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약해지는 모습을 외면했습니다. 한 번쯤은 제가 아버지를 업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힘들어할 때, 저도 등을 내어드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저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지만, 저는 그 시간 속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후회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에서만 남았습니다.


이제 저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며, 근육이 빠져나갑니다. 아버지와 제가 이러한 시간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 더 다르게 살았을까요? 미래를 보는 거울이 있었다면, 우리 가족은 더 많은 사랑을 나누었을까요? 아버지가 늙기를 바라는 대신,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을까요? 인간의 시간은 언젠가 역전됩니다. 나약하던 아이는 어른이 되고, 강하던 부모는 연약해집니다. 그 순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제야 깨닫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따뜻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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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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