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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가족
08화
어른아이들
어른 같았던 아이들... 그 시절엔
by
신수현
May 4. 2025
우리는 7형제이다.
남자-남자-남자-여자-여자-여자-여자.
큰오빠와 막내는 무려 17살 차이가 난다.
막내가 세 살일 때 큰오빠는 스무 살로 이미 성인이었다.
지금의 스무 살은 여전히 어리고 미성숙해 보이지만, 그 시절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농사일을 함께 하던, 어른 같은 아이들이었다.
형제간의 서열은 오빠들부터 시작되었다.
누구나 첫째에게 기대하고, 막내에게는 관대해지기 마련이다.
나 역시 그런 틀 안에서 성장했다.
만약 내 동생이 막내였거나, 내 바로 위가 오빠였다면, 나는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싸우며 더 강한 성격으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남동생이 있는 여자아이들은 장난감 하나, 리모컨 하나로도 다투며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큰오빠와 14살 차이가 난다.
오빠들이 늘 어른처럼 느껴졌고, 친구처럼 지내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컸다.
그래서 더더욱 거리감이 있었고, 친해질 기회도 없었다.
가끔 오빠와 다정하게 쇼핑을 가거나 전화로 수다를 떠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다.
어떻게 저렇게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까? 나와는 전혀 다른 가족 문화처럼 느껴졌다.
오빠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말하기 어려웠다.
마음이 아플 때도, 억울할 때도, 그냥 속으로 삼켰다.
그중 막내오빠는 결혼 전까지 여동생들과 잘 놀아주던 오빠였다.
장난도 잘 치고, 같이 앉아 텔레비전도 보고, 가끔은 라면도 끓여주곤 했다.
그래도 나는 어릴 때부터 남자가 어렵고, 지금도 그렇다.
내 나이보다 어린 남자라 해도 이미 40대인데도 나는 여전히 그들 앞에서 긴장하고 낯설다.
기억을 더듬으면, 아주 어릴 적 부모님이 외출하신 날들이 떠오른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데도 나는 그 시절의 기억이 또렷하다.
이상하게도 유아기 때의 풍경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당에 내려앉은 햇살, 마루에 놓인 아궁이 솥단지, 무쇠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던 수증기 같은 것들이 말이다.
우리 집을 조금만 지나면 개울이 나왔다.
그 시절에는 수도가 없었다.
마을마다 우물이나 펌프가 있었고, 그것도 여름철에는 물이 잘 나오지만 겨울이면 얼어붙어 아무 쓸모가 없었다.
물을 붓고 몇 번이나 펌프질을 해야 겨우 물 한 바가지 나왔다.
가장 힘든 건 빨래였다.
개울가에는 빨래터가 있었다.
아기를 둔 엄마들은 기저귀를 들고 나와 무릎을 꿇고 방망이를 두드렸다.
우리 집은 7형제나 되었으니 빨랫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겨울이 되면 땅이 얼고 손도 얼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외출하신 틈을 타 오빠들이 우리를 데리고 빨래터에 갔다.
호미를 들고 개울 근처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흙 속에는 옛날 동전이 묻혀 있었다.
오빠들은 그것을 ‘우리만의 보물찾기’처럼 여겼고, 우리는 숨죽이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니지만, 그 비밀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더 단단히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셔도 밥은 꼭 챙겨 먹어야 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밥을 지었고, 반찬을 만들었다.
언니가 해준 제육볶음을 먹고 학교에 간 날, 갑자기 온몸이 가려웠다.
얼굴이 부풀어 오르고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붓는 바람에 결국 조퇴했다.
그 시절에는 건강보험증도 없었고, 병원에 가는 것도 큰일이었다.
집에서 며칠을 앓았다.
다음 날에도 몸이 낫지 않았다.
작은언니가 내게 스카프를 메주고, 엄마가 떠준 따뜻한 조끼를 입혀주었다.
그래도 몸은 무거웠고, 나는 다시 조퇴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따뜻했던 조끼보다, 조용히 등을 다독여주던 언니의 손이 더 따뜻했다.
나는 지금도 종종 알레르기 반응을 겪는다.
돼지고기, 소고기, 해산물 등을 먹으면 몸이 붓고 가렵다.
약간 상한 음식에도 반응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멀쩡할 음식인데도, 내 몸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어릴 때부터 체질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같은 초등학생인데도 여섯 명의 동생을 돌봐야 했다.
밥을 챙겨주고, 싸움을 말리고, 울음을 달래야 했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를 돌보는, 그런 시대였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을 아이가 대신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자녀는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열을 만든다.
그 서열 안에서 책임이 생기고, 그 책임은 곧 ‘가족 안의 역할’이 된다.
누군가는 맏이로서, 누군가는 중간자로서, 누군가는 막내로서 각자의 몫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아버지는 형제간의 싸움을 가장 싫어하셨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우리는 서로를 도와주지 않되, 피해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이것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항상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늘 같은 사람이 상처를 받는다
.
형제는 겉으로는 “싫어”라고 말해도, 돌아서는 순간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게 되는 존재다.
내 마음과 상관없이 끊어낼 수 없는 끈, 피로 맺어진 가족. 아무리 멀리 가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존재들.
어른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 같은 어른도 있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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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연재
인턴 가족
06
이유 없는 싸움
07
신씨네 세 며느리 등장(1)
08
어른아이들
09
신씨네 세 며느리(2)
10
신씨네 세 며느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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