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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네 세 며느리 등장(1)

첫째 며느리 이 씨 이야기입니다.

by 신수현

큰오빠는 선을 보고 결혼했다.

그 시절, 서른을 넘기면 노총각이었기에, 31살 오빠와 24살 이 씨의 결혼은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때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이지만, 그때는 모두 결혼 적령기를 지났다고 여겼다.

무속인이었던 이모는 이 결혼을 반대했지만, 부모님은 "본인이 좋다는데" 하고 결혼을 시켰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작고 약해 보였지만, 눈이 동그랬고 얼굴도 그럭저럭 볼만했다. 무엇보다 오빠가 좋아했다.

엄마는 농사짓는 집안일을 걱정했지만, 현실은 농사일은커녕 새참 준비도 버거워했다.

오빠와 싸우면 밥을 안 하기도 했다.

기분 좋을 때는 활발하다가, 기분 나쁘면 방에 틀어박혔다.


오빠가 결혼하기 전엔 9 식구가 함께 살았다.

같은 세숫대야에 얼굴을 씻고, 같은 국그릇에 밥을 먹던 시절.

그런 공동체가, 이 씨가 오고부터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갑게 지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운 좋게 아버지가 2층 양옥집을 지어, 방을 나누어 살게 됐지만, 여전히 이 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다.

화장지가 떨어지면 오빠방에서 하나씩 꺼내줬고, 내 칫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입을 옷이 없어 빌려줬는데 그 옷은 은근슬쩍 이 씨의 소유가 돼버렸다. 화장지를 살 돈도 아버지가 주는 것이데도 말이다...


나는 예민한 아이였다. 오빠가 결혼했던 중학교시절, 사춘기, 몸도 마음도 약했다.

감기에 걸려 콧물로 고생하며 밥을 먹던 어느 날, 이 씨는 말했다.

"가서 코 풀고 와요."

처음엔 웃자고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코 풀고 와서 먹어요."


아픈 걸 걱정하는 대신 내게 수치를 줬다.

부모님도 아무 말 못 했다.

그게 더 서러웠다.

내 나이 고작 14~15살이었다.


사춘기 시절, 나는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했다.

처음엔 매주 집에 내려갔지만, 점점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19살에 처음 사회생활을 했으며 아직 엄마의 도움이 필요한데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간병은 엄마와 이 씨 몫이었다.

환자를 옮기는 것도 버거울 텐데 얼마나 짜증을 냈을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내려가겠다고 했지만, 작은 언니는 "너만 잘살면 된다"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주지 못했다. 그게 늘 마음에 남아있다.


오빠 결혼할 때는 설렜다.

장남은 아버지 대신, 큰며느리는 엄마 대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가족 안에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훈계도 못 하고, 오히려 눈치를 보게 된다.

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은 오빠와 아버지의 싸움으로 번졌고,

엄마의 일은 더 늘어났다.


십여 년 뒤, 큰오빠 내외는 분가했다. 정말 다행이다. 엄마에게...

그들에게는 두 딸이 있었고, 독립은 어쩌면 구원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과 사는 건 불편할 수 있다.

나도 엄마가 여행 가신 후, 아버지 식사만 챙기면서 얼마나 힘든지 알았다.

그래도 가족은, 불편함을 함께 견디고 타협하는 관계라고 믿는다.


나는 오빠와 이 씨를 탓하지 않는다.

나이 들어 보니, 어린 시절 결혼생활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겠다.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가까운 사이일수록 쉽게 상처 입는다.


그래도 이 씨는, 지금도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엄마 생신을 챙긴다.

검소하고 성실하게,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가끔 만나면 이야기하고 싶다.

서로 나이도 들었으니, 이제는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란, 거리 두기가 필요한 사이다.


아버지는 형제간의 다툼을 싫어했다.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떠난 지금, 신 씨 가정은 금이 가고 있다.

엄마마저 떠나면, 정말로 공중분해될 것만 같다.


남은 시간은... 준비 없이 떠나보낸 아버지의 시간처럼 후회 없이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매일 기도를 하고 있다.

지금 엄마나이는 88세인데

10년만 더 살게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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