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방문을 닫고 싸우거나, 아예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싸움은 소리로 새어 나온다. 벽 너머 고성, 밖에서 들려오는 언쟁, 거실 한쪽에서 들리는 흐느낌. 아이는 모른 척하지 못한다. 모르는 척할 수 없다.
우리 집도 그랬다. 싸움이 시작되면, 나는 언니, 동생과 작은방에 모여 숨을 죽였다.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싸움이 시작됐다는 걸 눈치챘다. 싸움의 이유는 들리지 않았지만, 공기가 바뀌는 건 느껴졌다. 집 안은 눌린 듯 무거웠다.
다툼의 이유는 늘 ‘성격 차이’라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양육 문제, 교육 방식, 경제적인 부담 등 구체적인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내용을 자녀에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눈치만 본다. 가끔은 우리 때문인가 싶어 괜히 숙연해진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며 자랐다. 분위기가 이상하면 조용히 있고, 눈치를 보며 말을 줄였다. 억울해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게 더 불편해지는 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왔다. 눈물이 나면, 말은 더 나오지 않았다.
이건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불만이 쌓여도 참고 넘겼고, 정말로 참기 힘든 순간이 와서야 터뜨렸다. 하지만 그때 돌아오는 반응은 “왜 갑자기 그래?”였다. 갑자기라고? 나는 늘 힘들었는데,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그럴수록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열면 오히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말하면 예민하다 하고, 말하지 않으면 “왜 아무 말 안 해?”라고 한다. 감정은 설명할수록 복잡해지고, 설명을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말투가 문제일까 싶어 스피치 학원도 여러 군데 다녔다. 발음, 발성, 말의 속도까지 교정하려 애썼다. 목소리를 바꾸고 싶었고,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내 목소리도, 말투도 괜찮다고 했다. 그제야 알았다. 문제는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감이라는 걸...
지금은 불만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감정을 숨기기보다는 조심스럽게 말로 꺼내보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쉽진 않다. 어떤 사람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만, 어떤 사람은 “불만만 많다”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건 상황에 대한 생각일 뿐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불평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는 말이 없어도 다 괜찮아 보인다. 말을 아끼는 사람을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말을 아끼는 것과 참는 것은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있고, 말하지 않아서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였다.
가족은 서로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가장 솔직하기 어려운 관계이기도 하다. 싸움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문제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 데 있다. 말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고, 오해는 상처로 남는다.
지금도 싸움은 일어난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 말했으면 좋겠다. “나 이 말하기가 어려웠어. 그래도 말해보고 싶었어.” 그렇게 시작되는 대화가 진짜 관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어릴 적의 나는 항상 조용히 눈치를 보며 싸움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제는 나의 마음을 조심스럽게라도 꺼내보려 한다. 서로 다른 감정, 불만, 오해는 말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