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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의 무게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by 신수현 Apr 06. 2025

장남은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장남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야만 했다.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의 장남, 큰오빠는 어린 아버지이자 어린 어른이었다.  

   

우리 집은 형제가 많았지만, 시끄럽게 북적이지도 않았다. 모든 형제가 모이는 자리는 아버지의 생신이나 명절 때뿐이었고, 그 외의 시간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았다. 큰오빠는 초등학교를 서울에서 시작해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마쳤고, 부모님 대신 고모와 할머니와 함께 살며, 세 살 위의 고모와는 마치 남매처럼 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오빠의 감정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의 오빠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말마다 집에 내려온 오빠는 할머니와의 일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하곤 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 고등어 반찬을 내놓으면, 고모에게는 살이 많은 몸통을, 오빠에게는 살이 없는 꼬리 부분을 주셨다고 한다. 손주와 딸의 차이였을까? 오빠는 서운함을 느꼈는지 엄마에게 이야기했지만, 엄마는 “사내놈이 그런 걸로 미주알고주알 말하지 마라”라고 단호하게 잘랐다. 그 순간, 오빠는 아마 자신의 감정과 말을 삼키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오빠는 말을 아끼고, 결정을 망설이며, 무거운 일에는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게 장남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오빠는 누구보다도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던 것 같다. 싸우는 것을 싫어해 참고 사는 것이 가정을 평화롭게 지키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상업고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했지만, 일이 뜻대로 풀리진 않았다. 모든 형제들이 영리하고 성실했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도 세서,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아가게 되었다. 형제 셋이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들으며 땅을 일구고, 결혼하고, 집을 나가는 모습이 어린 내 기억에 흐릿하게 남아 있다.     


큰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도, 군대 가던 날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와 큰오빠의 나이 차이는 14살이라, 그가 20살에 군대에 갔을 때 나는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군대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카드와 가끔 울리던 전화 속 목소리가 오빠의 흔적이었다. 오빠는 네 명의 여동생에게 카드를 보냈고, 여동생들에게 별명을 지어준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의 별명은 ‘낑낑마’라고 불렀다. 그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결혼 전, 오빠는 남동생들과도 잘 어울렸고, 여동생들도 챙겼다. 말수는 적었지만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전형적인 큰오빠였다. 하지만 결혼 후 가정을 이루면서 오빠는 가족들과 점점 멀어졌다. 나는 오빠가 결혼 후 변화된 가정생활을 기대했다. 큰오빠가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한다면, 큰올케언니는 어머니의 역할을 맡겠지... 그렇게 되면 엄마의 집안일도 덜 수 있고, 엄마가 조금 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빠가 가족을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믿는다. 형제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고, 명절 아침에 아침상을 차리며, 올케언니는 친정에 빨리 가고 싶어 했지만, 오빠는 우리 집에 머물기를 원했다. 결혼하기 전, 명절을 기다리며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야식을 먹으며 가족이 모두 새해를 맞이하는 그런 시간을 원했을 텐데... 그런데 왜 그렇게 멀어졌을까?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 후, 형제 사이의 균형은 흔들렸다. 아버지는 큰소리만 치는 상처를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 가족의 기둥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빠는 더 이상 형제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않았다. 대신 장남으로서의 도리는 지키면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일에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부모로부터 받은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 무게를 안고 어른이 되고, 어떤 이는 그 무게에 눌려 주저앉는다. 오빠는 버티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를 나눌 줄은 몰랐다. 가정을 이루면서 오빠는 자신의 편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부모와 형제라는 울타리 속에서 늘 외로웠던 사람. 그 외로움을 새 가족에게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형제와의 거리도 생겼다.    

 

우리 가족은 일곱 형제다. 일곱 색깔의 무지개처럼 각자의 색으로 살아간다. 어쩌면 오빠는 그 무지개를 하나로 이어주려 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함께 힘을 모으기에는 각자의 방향이 너무 달랐다. 지금의 오빠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려 노력하고 있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 말은 여전히 적고 감정 표현도 서툴지만, 그건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배운 방식으로 그는 여전히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만약 가족이 줄다리기 팀이었다면, 오빠는 항상 맨 앞에 있었을 거라고. 중심을 잡고 땅을 박차며 끌어당기는 역할. 뒤에서는 동생들이 흔들리며 겨우 따라붙었을 것이다. 그 무게를 함께 나눴더라면, 오빠는 조금 더 가벼웠을까.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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