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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할 수 없는 것들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선택의 순간이 되어 돌아온다.

by 신수현 Mar 23. 2025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이미 정해진 환경들 속에서 세상을 시작하게 된다. 부모, 형제, 물질적인 혜택, 심지어 우리의 성격까지도 어느 정도는 주어진 것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한 유튜브 채널에서 ‘태어나 보니 개그맨 xxx의 딸’이라는 제목을 본 적이 있다. 부모의 유명세가 자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부모가 아이를 계획할 수는 있어도,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설사 아이를 계획하여 낳을 순 있어도 그 아이의 성장, 양육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선택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영원히 고정된 것은 아니다.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점차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가게 된다.     


나는 일곱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딸로는 셋째였고, 내 뒤로 막내 여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님은 원래 다섯 명까지만 계획하셨지만, 조부모님의 기대 속에서 나는 세상에 나왔다. 부모님은 나를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작은 차이들이 모여 나를 형성했다. 형제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수행했고, 나는 때로는 위로부터 물려받는 존재로, 때로는 아래를 돌보아야 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작은 시골, 초등학교에 입학하려면 부모님이 동반해야 한다. 아버지가 큰오빠부터 바로 위 언니까지 학교에 데려갔다. “이 아이가 막내이지요?” 아버지는 둘이나 더 있다는 말을 못 해서 “예... 이 아이가 막내예요”라고 하셔서 그 이후로 입학할 때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데리고 가셨다.     


선택은 책임을 동반한다. 그러나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래서 가족은 때로 서로를 원망하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큰오빠는 여섯 명의 동생이 있는 상황에서 태어났고, 나는 내가 막내라고 생각했지만 또 다른 동생이 태어나면서 내 위치가 바뀌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소유한 듯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을 동생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경험을 했다. 동생들은 나보다 더 나은 것들을 받을 수도 있었고,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들이 가족 간의 불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가족은 부담이 아니라 힘이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에서 차태현이 연기한 주인공은 죽은 아버지와 대화하며 “혼자 사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가족을 갖는 건 더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가족은 힘든 것이 아니라 힘이 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우리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가족이 힘든 짐이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며 우리를 키우셨을까?     


삶은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시작하지만, 결국 선택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어릴 적 나는 갖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형제들의 물건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했다. 너덜너덜해진 옷과 가방을 사용하며, 새로운 것들은 내 것이 아닌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스스로 사게 되었다. 새 스마트폰, 새 책, 새 가방, 새 가구… 하지만 정작 이런 것들이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자유와 독립을 갈망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한 자유는 오히려 억압이 되었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능력이 없다면, 독립은 기대했던 자유가 아니라 또 다른 속박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출발했지만, 우리는 준비된 자로서 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자유는 선택할 수 없던 것들을 넘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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