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Answer Oct 16. 2020

우연한 기회로 마주한 지난 추억과 특별한 손님

바르셀로나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


저녁을 먹은 후 카탈루냐 광장 인근에서 야경을 즐기고 있던 도중 여행 책자에서 스페인 광장이 유명하다는 것이 떠올라 지하철을 타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에스파냐역에 내려 올라와보니 큰 원형 경기장이 눈에 띄었다. 그건 바로 빨간 벽돌로 지어진 그곳은 바로 투우 경기장이었다.

2012년 카탈루냐 의회에서 투우를 법으로 금지하기 전까지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모습인 투우 경기가 펼쳐졌을 것이다. 이 법은 스페인 최초로 투우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라는 것에서 동물보호에 관해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투우장 주변을 둘러보다가 멀리 궁전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불빛들 비추고 있어서 궁금함이 증폭되어 그리로 몸을 움직였다. 멀리 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음악이 들리고 무대를 설치하는 모습도 보이면서 행사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행사는 새해맞이였다.

그때 깨달았다. 바로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을. 정말 행운이었다. 우연히 찾아온 장소에서 외국에서 새해맞이 축제를 즐길 수 있다니!


낯선 이와의 즐거운 대화


새해맞이 축제를 보기 위해 행사장 앞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8~9시 경이라서 관계자들은 행사 준비에 여념 없었고 사람들도 많지 않았으며 시간도 많이 남아서 어떡할지 고민했다.

결국 밤이 되니까 추워서 감기에 걸리면 큰일이니까 일단 스페인 광장으로 내려왔고 배가 고파져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그 후 식당을 나와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던 중 바로 옆에 호텔에 있어서 그곳으로 향했다. 호텔 관계자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있어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호텔 로비에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그래서 좋은 곳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아내와 함께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미국인 노부부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우리 옆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그런 후에야 우리에게 특별한 손님 같은 노(老) 부부가 앉게 되었다.

내 옆에는 할머니가 앉았는데, 처음에는 서로 데면데면했다가 할머니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영어에는 문외한 나로선 할머니와의 대화가 부담스러웠지만 아내의 도움과 나의 하찮은 바디랭귀지를 곁들여가며 그녀와의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 내용 전부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략적으로 부부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살고 지금은 반려견들과 함께 세계일주 중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면서 제게 명함 하나를 주었고 우리 부부는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오늘의 만남을 기록해두었다.

첫 유럽 여행에서 낯선 이와 그것도 외국인과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즐거운 대화를 했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경험은 책이나 TV에서 남들한테나 벌어지는 줄 알았는데, 내게도 생기다니! 참 뜻깊은 경험이었다.  


해외에서 맞는 첫 새해


노 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호텔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가면서 그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했다(이들과의 만남이 끝이 아니었다).

우리도 함께 밖으로 나갔는데, 2~3시간 전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스페인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초청 가수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카탈루냐 미술관에서는 화려한 불빛과 레이저 쇼는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 광경을 한참을 구경하던 중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7, 6, 5, 4, 3, 2, 1"

"happy new year!"


사람들과 함께 큰소리로 을 외치는 순간! 드디어 새해를 맞이했고 이와 동시에 멋진 불꽃놀이가 바르셀로나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사람들은 서로 새해 인사를 하며 축하를 해주면서 이 축제를 즐겼다.

이 모습이 참 익숙했다. 서울 종각 앞에서 펼쳐지는 새해맞이 행사와 비슷한 광경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보다 훨씬 열정이라는 점. 저마다 스피커를 이용하여 흥겨운 음악을 크게 틀면서 춤을 추었다.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흥겹게 즐기는 모습에서 스페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새해를 맞이하는지...역시 열정의 나라다웠다.


어? 내 주머니에 손이? 아내는 아닌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무분별하게 담배를 피워서 숨을 쉬기 어려웠다는 점과 개인적으로 갑작스러운 사건이 발생한 점만 빼만 완벽한 축제였지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우리도 사람들과 즐겁게 축제를 즐기던 중 손이 시려 주머니에 오른손을 집어넣었는지 왠지 까칠하고 거친 느낌이 났다.

직감적으로 '이건 아내의 손이 아니야'란 걸 알 수 있었고 위치적으로도 아내는 내 왼편에 있었다.

'소매치기구나'

라는 생각에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그 손을 잡으려 하는 순간! 그 의문의 손은 사라지고 없었다.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선 재빨리 손을 뺐던 것이다. 유럽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더니, 그 말이 나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덕분에 그때부터 우리는 더욱 경계를 강화하면서 여행하게 되었고 뒤숭숭한 마음이었지만 평생에 한번 있을까 싶은 새해에서의 축제를 즐기다가 피곤함이 밀려와 숙소로 향했다.  


같은 추억 다른 기억 - 남편의 기억 상자


함께 맞이한 새해가 처음이 아니었기에


우리에게 “새해맞이”라는 한다면 2013년 12월 31일이 떠오른다.

그 당시 남친, 여친 관계였던 우리는 함께 2014년을 맞이하기 위해 종각역을 향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우리는 손을 꼭 붙잡고서 바르셀로나에서처럼 카운트다운을 크게 외쳤었다.

어디까지 걸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먼 곳까지 함께 걷고서야 지하철을 탔었다.

이윽고 그녀의 집 앞(지금은 처가댁이 되었지만 그때는 이렇게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었다)에 다달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채 집으로 들어가는 그녀가 떠오른다.

혼자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그때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런 사이였던 우리가 지금은 한 집에서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로서, 아내자 남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이전 09화 겨울왕국 파리에서 따뜻한 남쪽 나라인 바르셀로나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