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몬세라트
외국에서 처음 맞이한 새해 첫날.
앞으로의 한해를 생각하며 여유롭게 거닐고 싶었다.
그래서 한적한 곳을 원했고 우리는 몬세라트로 향했다.
그곳이 주는 여유는 물론 수도원의 경건함과 고풍스러움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둘째 날, 우리는 도시 인근에 있는 몬세라트(Montserrat)로 향했다. 1,236m 높이로 톱니 모양의 기괴한 형태로 이루어진 돌산인 이곳에는 산 중턱에 몬세라트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스파냐 역에서 기차를 타서 약 1시간가량 걸려서 몬세라트에 오를 수 있는 Montserrat-Aeri역에 도착했다. 봉우리마다 멋짐과 우아함을 뽐내고 있었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이곳은 가우디가 사그라다 파말리아 성당을 설계할 때 영감을 받았던 것으로 유명한 곳인데, 직접 와보니까 가우디가 반하다고 남을 만큼 웅장하면서도 섬세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면서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커다란 바위산들이 수도원을 비롯한 이곳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아늑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몬세라트 산들의 중앙에는 수도원은 위치해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면서 이렇게 높은 곳에 이 같은 건물들을 세웠다는 게 믿기지 않았고 마치 우리나라의 산속 깊이 있는 사찰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신비로움에 속세에서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깨끗이 정화되는 듯했다.
드디어 수도원에 다달았다. 앞 광장에서 시선을 저먼 아래로 향하자 바위산들 사이로 놓인 철로와 그 옆에 함께 흐르는 강이 절경이었다. 시선을 멀리 향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풍경처럼 산들이 겹겹이 펼쳐져 있어 친근함을 느꼈다. 비록 안개로 인해 탁 트인 시야는 아니었지만 이곳의 자연을 음미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눈앞의 풍경에 취해 넋을 놓고 보고 있다가 시간이 한없이 흘러갈 것 같아서 얼른 정신을 차린 후 성당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유럽의 대성당에 비해서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 위치가 해발 725m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코 규모만으로 판단할 수 않을 것이다. 한편, 유명한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은 제단 위쪽에 모셔져 있어서 옆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어서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멀리서만 봤다. 가톨릭 신자라면, 꼭 추천드린다. 사람들이 성모의 공에 손을 얼마나 정성스레 올려놓는지, 보는 사람도 그의 신앙이 느껴질 정도니.
성당과 수도원 여기저기를 둘러본 후 산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수도원이 위치한 곳이 725m이고 산 정상의 높이는 1,236m가량이 되므로 수도원에서부터 그곳까지는 도보 또는 푸니쿨라(산악용 열차)를 이용하여 오를 수 있었다. 우리는 푸니쿨라를 티켓을 구입하여 산 정상으로 향했고 약 5분 후에 산 정상에 도착했다.
그곳은 따사로운 햇볕과 함께 여유로움, 활기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소란스럽지 않아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분위기에 취해 몬세라트 능선을 유유자적하며 걸었다. 카탈루냐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지중해가 보이는 듯했고 반대편에는 저 멀리 눈 덮인 피레네 산맥이 손에 잡힐 듯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행복 그 자체였다. 귓가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제이슨 므라즈의 [Living in the moment]가 흐르고 있었고 우리는 이 노래의 제목처럼 이 순간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즐겁고 오붓한 시간을 보낸 후 산을 내려와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카탈루냐 광장으로 돌아온 후 람블라스 거리로 향했다. 람블라스 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부터 포르탈 데 라 파우 광장까지 약 1km 정도 형성되어 있다. 이 거리를 중심으로 카테드랄, 박물관 등등이 모여 있고 주말이면 다양한 볼거리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는 저녁 무렵에 갔기 때문에 한낮처럼 활기차고 역동적인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를 즐기기 위해 모여들었다. 우리도 저녁식사를 한 후 람블라스 거리를 거닐면서 야경을 만끽했다.
포르탈 데 라 파우 광장에 다다르니 콜럼버스 기념탑이 세워져 있었다. 1888년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데, 높이가 약 50m 정도로 탑의 정상에는 콜럼버스가 손가락으로 본인 죽기 전까지 아시아라고 믿었던 아메리카 신대륙을 가리키고 있었고 그의 발아래는 지구의가 놓여 있었다.
기념탑을 둘러본 후 한가한 항구를 지나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 카테드랄, 박물관을 비롯하여 좁은 골목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골목을 조심스레 지나다가 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오기도 하고 사람들이 없다가도 어느 골목에 접어드니 수많은 인파가 나타나는 등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우연히 찾은 카테드랄 앞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음악을 들으며 노천카페에서 맥주 한잔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을 즐겼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아내와 함께 몬세라트행 기차를 타면서 우연히 옆 일행의 소매치기 일화를 듣게 되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카탈루냐 광장에서 하차한 후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친절하게 다가와 말을 걸더니 갑자기 본인에게 밀가루를 뿌리더라는 것이다. 당황한 그들은 얼굴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낸 후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은 없었고 덩달아 본인들의 캐리어도 사라졌다는 얘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제 낯선 이의 거친 손이 떠올랐다. 아내도 소름을 끼친다며 정말 조심하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면서도 어젯밤의 새해맞이 행사를 경험했다는 것이 참 즐거웠다는 말과 함께 서로 간의 다툼은 눈 녹듯 사라지는 듯했다.
한편, 지금도 몬세라트 정상에서 들었던 제이슨 므라즈의 [Living in the moment]를 들을 때면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찍어둔 영상도 함께 보면서 손잡고 거닐었던 그곳의 여유로움을 느끼면서 잠시나마 추억에 젖는다. 여행이 주는 이 같은 추억이 소확행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