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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Answer Jul 14. 2020

우리 곁을 떠난 짐들에 대하여

부부여행단의 이탈리아 여행 1탄

# 프롤로그 - 여행은 떠나는 자체만으로도 큰 경험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올리면 유명 대도시나 관광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곤 한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이번 여행에서 아찔하면서 의미있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어쩌면 여행은 길의 종착지가 아니라 여행 “길” 자체라고

그 길 위에서 겪은 사건들이 여행이고 일상생활의 연장선이자 삶 그 자체가 아닐까.

이 여행기는 보름 간의 이탈리아 여행 중 밀라노와 베르가모에서 겪었던 좌충우돌 경험담을 담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 부부의 여행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제 1화 집 떠나면 고생인가?


우리는 인천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 자정이 다 되어서야 밀라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새해 첫날을 비행기 안에서 맞이하는 독특한 경험해볼 수 있어서 여행가는 기분이 한층 고조되었다.

그렇게 비행기는 경유지인 이스탄불로 향했고 예정된 시간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에서 겨울왕국을 보게 될 줄이야....몇 십년의 폭설로 인해 공항은 마비된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너무나 태연한 공항 관계자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행기에서 바로 내릴 수 없었는데,

때마침 이스탄불에는 몇 십 년 만에 폭설이 내린 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12시간 이상을 타고 온 좁은 비행기 안에서 답답함과의 싸움을 벌이면서 1시간을 더 기다린 끝에야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공항 내부에 들어서니까 이곳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수많은 인파를 뚫고서야 겨우 환승 게이트로 갈 수 있었는데,

환승 게이트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연히 본 전광판에서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 번호와 행선지가 떠서 재빨리 환승 게이트로 갈 수 있는 행운이 뒤따랐다.

다행히 밀라노행 비행기는 30분 정도 지연되어 가까스로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고.


관계자는 너무나 차분하게 공항 사정을 설명하는 반면, 사람들은 초조하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타게 된 우리는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밀라노행 비행기로 이동하면서 눈 덮인 공항을 구경하는 여유도 만끽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에서 눈이라니! 뜻밖의 경험이 우리를 더욱 흥분시켰다.

갇혀 있던 비행기 안에서는 눈보다는 여길 빠져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같은 활주로지만 처해진 환경과 마음가짐이 다르니까 눈앞의 풍경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눈 덮인 활주로를 재미나게 보던 우리 앞에서 캐리어들을 싣고 가는 운반차량 위의 짐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운전사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있었고.

우리는 내팽겨져 있는 짐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장면이 앞으로 우리가 처할 운명의 복선인지는 알아채지는 못했다.      


제 2화 대체 우리 짐은 어디로?     


밀라노 공항 도착한 직후 우리 짐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설렘으로 가득했던 모습.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모른 채...


드디어 도착한 밀라노 공항.

우리는 이곳에서의 여행을 꿈꾸며 공항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짐이 나오길 기다렸다.

1시간쯤 지나도 컨베이어벨트에서는 우리 캐리어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서야 우리는 직감적으로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 싶어 분실물신고센터로 향했다.

우리 얼굴에는 좀 전의 여행의 설렘과 웃음기는 온데간데없고 무겁고 침울한 발자국 소리만 날뿐이었다.

센터로 향하는 길이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짐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웠고 여행일정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화가 났다.

도착한 분실센터에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엔 우리와 같은 비행기를 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앗” 소리와 함께 이스탄불 공항에서 떨어진 짐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그 운반차량은 우리가 탈 비행기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던 것이다.

그 폭설이 내리는 활주로에 내팽개쳐 있던 짐들 중 하나가 우리 것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망연자실했다.

우리는 분실신고를 한 후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여행의 기쁨과 흥분은 사라졌고 축 쳐진 어깨만이 있을 뿐이었다.

공항버스는 왜 이리 늦게 오는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짜증만 났고 수십 분이 지난 후에야 버스가 도착했다.


밀라노 중앙역으로 향하는 우리. 웃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망연자실하여 멘붕이었다는.


밀라노 중앙역에 도착한 후 우리는 우선 급한 대로 옷부터 사야 했다.

아내는 속옷부터 모든 것들이 캐리어에 있었던 터라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입해야 했으니까 예정에도 없던 지출을 하게 되어 여행 경비가 줄어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여행의 첫 일정부터 꼬이니까 그 유명하다던 밀라노 중앙역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곳이 뭐가 멋지다는 건지 도무지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로 붐비는 역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필요한 것들을 구입한 후 숙소에 도착했다.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피곤함이 밀려왔다.

아마 허탈감과 안타까움, 짜증, 긴장감이 일시에 봉인 해제되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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