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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리 Jan 06. 2024

3.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날

그리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엄청 졸린 책이다.  이것이 <어린 왕자>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그 때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어린 왕자>를 읽고 독후감을 쓰는 숙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불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엄청나게 졸았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갔다. 심지어 내용 중에 주정뱅이가 있는 별에 어린 왕자가 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봤던 책은 주정뱅이를 술고래라고 번역해 놨었다. 이걸 분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나는 술고래가 진짜 고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 어휘력이 낮은 탓도 있겠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어린 왕자>를 읽고 독후감을 쓰라는 것은 가혹했단 생각이 든다. 정말 이 숙제를 내준 선생님은 <어린 왕자>를 읽어는 봤으려나 싶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술고래가 나오는 <어린 왕자>와 멀어졌다.


그리고 20대 초반이 돼서야 다시 우연한 기회로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다.

그런데!

그런데!

술 마시는 고래가 나오는 책인 줄 알았던 이 책이!!!

나를 졸게 만들던 그 책이!!

이렇게 아름답고 가슴속 어떠한 울림을 계속 주는 책이었다니!!      


어린 왕자와 술고래의 마지막 대사, “아저씨는 왜 술을 마셔요?”, “부끄러운 걸 잊으려고 술을 마시지.” “무엇이 부끄러운데요?” 술고래가 대답한다. “술 마시는 게 부끄럽지.”     


와, 인간 사회의 아이러니를 한 번에 꼬집으면서 마음 어딘가를 불편하게 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명장면이 있었는데, 초2 때는 몰랐다.


<어린 왕자>는 <연금술사> 이후로 내 마음에 심어진 소중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책을 초등학교 2학년 때 읽게 했다는 것을 원망하며, 한편으로 나는 엄청나게 빠른 선행 교육을 받았다 생각했다. 성인이 봐도 이해 안 가는 말이 너무 많은데...


아무튼,

이렇게 다시 <어린 왕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책에는 가슴을 울리는 명언들이 넘쳐난다. 40대가 된 지금도 가끔 이 책을 산책하듯이 보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문구가 마음에 새겨진다.


20대 때에는 어린 왕자와 여우 이야기에서 ‘길들인다’라는 것이 주요 관심 문구였다. 이걸 연애에 적용하려다 실패했었다. 돌이켜 보면 ‘길들인다’는 걸 그저 행위로만 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길들인다는 건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다. 일방적으로 타인을 길들인다는 거. 이건 가스라이팅 아닌가.

길들임은 상호작용이다. 우리가 강아지를 길들인다. 우리는 마음 어딘가를 강아지에게 내어준다. 강아지도 자기 마음을 우리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서서히 두 존재는 그 연결이 강해지면서 결속이 생기고,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길들임은 바로 ‘사랑’이다. 아주 온전한 사랑이다.


어릴 때는 사랑을 하고 싶어 마음에 있는 상대를 길들여보려 했다. 될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기에 길들인다는 것에는 사랑이 우선하지 않는다. 사랑은 나중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거다. 길들인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와 너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부터 시작이다. 서로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내 마음에 너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이 계속되면 사랑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이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알려준 방법은 매일 같은 시간 찾아오는 것이다. 여우의 마음에 이미 어린 왕자가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약 여우 마음에 어린 왕자가 없는데, 어린 왕자가 매일 여우를 찾아온다면, 그 스토킹이다.


사람 사이의 사랑과 길들임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여우는 어린 왕자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소유하지 않는다. 눈물을 머금고 어린 왕자를 떠나보낸다. 어린 왕자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나보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 이타심이다. 정말로 위한다면 상대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요즘엔 사랑이라는 과장된 가면을 쓴 폭력이 뉴스에 자주 나온다. 내 몸과 마음이 불편한 건 사랑일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나 때문에 상대방이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일은 절대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그렇게 되는 건 그 사람이 그냥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갑자기 너무 화가 나는 일이라 글이 다른 길로 빠졌다.      


초등학교 2학년 그때 읽었던 <어린 왕자>의 기억을 하고 있다는 건(좋건 나쁘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 경험했던 "초기 기억들"은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이 기억들을 분석해 보면 지금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억이 우리 안에 살아있다는 것이다.

초2 때의 이 기억은 나를 다시 어린 왕자와 만나게 하기 위한 기억일 수 있겠다.

아마도 세상이 내게 보낸 싸인이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그때 그 숙제를 내주신 선생님의 빅픽쳐에 감사드린다.)     


나는 지금도 어린 왕자와 같이 살아간다. 40대가 된 지금,

어린 왕자는 나에게 나로서 사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같은 시각으로 별들을 보지 않아.

여행하는 사람에게 별은 길잡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불빛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연구할 대상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돈이야.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오아시스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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