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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현 Jan 17. 2021

카제인나트륨이 땡길 때

(어느 아재의 반성)

카제인나트륨이 땡길 때가 있다.

눈앞에 놓인 고급진 원두커피 보다

소문이 불량한 카제인나트륨이 땡길 때가 있다.


카제인나트륨을 땡길 때는

그 고유한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다음의 흡입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첫째, 고급 사기잔보다는

일회용 전용 종이컵을 사용한다.

이것저것 따질 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삶의 역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수저보다는

머리가 댕강 날아간 비닐 봉지를 이용해

휘휘 저어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량의 환경호르몬은

카제인나트륨의 풍미를 배가하는듯 하다.


셋째, 진하게 타야 맛있다.

다른 커피는 연하게 마실 수도 있는데

에스프레소도 아닌 것이

밍밍하게 먹을 바엔 차라리 안먹는 편이 낫다.


마지막으로, 식기 전에 마신다.

원래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오래 두고 마시던 것이 아니다.

더구나 식어버린 카제인나트륨은

종종 속쓰림을 유발한다.

행여 마시다 중간에 식으면

아낌없이 버리는 것이 좋다.

과감히 찢어 하나 더 타서 마시면 된다.


카제인나트륨은 대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땡긴다.


소득없이 열심히만 일하는 나에 대한

보상이 필요할 때.
 

욕먹고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 대한

위로가 필요할 때.


방전된 나의 심장과 두뇌를

강제로 발전시키고 싶을 때
 

조바심속에 일희일비하며 살아가는 나에게

'잠깐 멈춤'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을 때.
 

하루하루 세상 눈치 보느라 나를 잃어버린 나에게

한 때 기세등등했던 진짜배기 셀프가 존재했음을 일깨워주고 싶을 때.


요즘 부쩍 카제인나트륨이 땡긴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카제인나트륨 속에 담긴 짙은 향수를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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