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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을 기다리며 Mar 03. 2020

엄마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 봄이 오는 길목에서 엄마와 보내는 일상 1 

이게 뭐라고, 서둘러 나는 책상에 앉았다. 아직 아침 식사를 마치지 않으신 친정엄마의 말벗을 딸에게 맡기고. 

“지아야, 식사가 끝나면 할머니와 함께 양치하고, 안약도 넣어드리렴. 엄마는 글쓰기 시작할게.” 


엄마가 대전으로 오신지 5일째다. 그간 몸에 생긴 병조차도 마음처럼 미련하게 참았던 천사같은 오빠가 지난 토요일 입원을 했다. 둘째 오빠와 나는 많이 미안했다. 집에 계신 부모님 걱정으로 몸도 함부로 아플 수 없다며 어떻게든 견딘 큰오빠의 무던한 사랑이 늘 고마웠다. 신랑과 나는 코로나 19로 오빠가 있는 병원에는 들르지도 못하고 며칠 드실 아버지의 음식 장을 급히 봐 놓고 엄마를 모시고 안동을 나섰다. 눈물이 핑 났다. 

“나는 문도 안 잠그고 있을 테니 엄마 잘 모시고 가라. 혹시나 하면 아무나 문 따고 들어오게 해 놓고 지내니까 걱정마라. 잘 됐다. 엄마는 니가 모시고 가고, 진이는 병원에 있으니.” 


나의 봄방학과 아이들의 학원과 방과 후 수업의 잠정적 휴원이 이어지고 있는 시간, 신랑이 일찍 출근하고 나면 우리 넷은 콩닥콩닥 편안한 하루를 집에서 보낸다. 아침을 먹기가 바쁘게 아들은 대충 책을 읽고 문제집을 풀고는 바로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본다. 딸은 할머니와 엄마의 커피를 타서 이쁜 찻잔에 담아 드린다. 커피를 마신 엄마는 지아 손을 잡고 양치까지 하고 거실 쇼파에 앉으면 다시 지아는 안약을 넣어드린다. 그리고 나면 아이들은 키넥트 스포츠를 즐기거나 컬러링 북을 펴고 할머니 옆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사이 나는 온통 빨래를 돌린다. 이불도 빨고, 겉옷도 빨아 건조기를 계속 돌린다. 그러면 또 밥 먹을 때다. 세상에나 돌아서면 밥때라더니 딱 맞다. 밥과 밥 먹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아들이 항상 메뉴를 정해주니 세 끼를 다른 메뉴로 차리고 싶은 내 일을 늘 도와주는 셈이다. 오늘은 스팸 김밥이 기다리고 있다. 


2014년에 엄마는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으셨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우리 엄마도 드라마의 주인공 혜자(김혜자)의 삶을 닮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뒤섞여 있는 기억을 담담히 정리해 나가는 혜자, 하지만 길고 길었던 인생을 온전히 기억해 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리고 어머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 아들(안내상)은 혜자에게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묻는다. / <눈이 부시게> 1화에서 인용


엊그제 밤에는 잠자리에 누우셔서 “아빠는 왜 아직도 안 들어오시냐. 뭐, 일 하시느라 늦으시는 거겠지만, 너무 늦다” 하시는데 아마 그 순간은 엄마도 뒤섞이는 기억 가운데 는 사십대의 어려웠던 시절로 돌아가신 듯했다. “으응, 걱정 마. 아빠는 안동에 잘 계시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편안히 말씀드렸더니 더 이상 아빠 걱정을 아니 하시고 잠에 드신다. 엄마의 경우, 다행히 치매의 진행 속도가 늦다. 가족들을 다 알아보시고, 간헐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심각하거나 생각과 판단이 필요한 대화에도 잘 참여하시며 엄마의 의견을 내놓으신다. 지난 1월 설음식부터는 오빠가 거의 다 했지만 그 동안 1년에 10여 차례의 제사 음식도 다 하셨다. 요근래 엄마를 모시고 살아보니 조금 알겠다. 엄마의 치매속도가 다행히 늦은 이유를. 가장 먼저는 지극정성으로 모셔 준 오빠의 사랑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살아온 엄마의 습관과 태도, 성품이 엄마를 곱게 늙어가게 도와 주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엄마는 많이 부지런하시다. 일어나시면 화장실에서 세수며 머리 손질을 하시고 선반 정리도 하시느라 한참 있어야 나오신다. 엄마가 지나간 자리는 다 반듯해지고 반질거린다. 방바닥이며 거실 책상이며 어디든 손으로 닦고 줍고 하셔서 깨끗해진다. 물건을 어디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라 내 물건이 사라지는 일은 다행히 없다. 설거지가 끝난 부엌에서도 내 정리에 좀 더 보태며 무언가를 하신다. 그런 모습이 예전엔 싫었는데 지금은 감사하다. 한동균 신경과 원장님은 치매환자의 경우, 계속 몸을 움직이거나 규칙적인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본인 스스로가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짐이 아니라 중요한 존재라는 존재감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엄마도 어디엔가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시고, 이런 일은 내가 잘 하는 일이라는 자존감을 아직 가지고 계셔서 말이다. 어제 오후엔 재욱이 방으로 들어가셔서 방바닥에 전시해 놓은 블록 작품을 정리 안 해 놓은 것인 줄 알고 분리하여 통에 넣으셨다. 다행히 재욱이도 할머니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 잘 넘어갔다. 한 시도 그냥 앉아 있으시지는 않으신다. 안동에서도 그러하실 거라 믿는다. 


엄마는 집중을 잘 하신다. 학생 때 공부를 잘 하셨고, 배우고 익히는 걸 싫어하지 않으셨던 습관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지금도 영어든 수학이든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교재를 그냥 넘기지 않고 자세히 보신다. 물론 읽고 이해하시는 과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앉으셔서 보거나, 그리거나 색칠하시는 일을 시작하시면 몰입하여 두 세 시간을 작업하신다. 그러나 안동은 이런 환경은 못 되니 그게 안타깝다. 


그리고 엄마는 말씀하시기를 참 좋아하신다. 점심을 먹고 오후엔 아이들도 각자 할 일을 하고 엄마에겐 TV화면으로 지나 간 <전국노래자랑>을 틀어 드려는데, 많이 웃으시며 보신다. 그러다가 너무 웃긴 장면에서는 “은영아, 이것 좀 봐봐. 정말 잘한다.” 연신 부르신다. 거실 창을 바라보고 글을 쓰고 있던 나는 안경을 바꿔 끼고 뒤돌아보며 짧게 짧게 추임새를 전한다. “진짜 잘 하시네.” 그러면 엄마는 또 물어오신다. “은영아, 할 일 많아? ”


오늘은 이렇게 답했다. “응, 글쓰기. 엄마 이야기도 있어. 부지런하시다구 적었어.” “그래? 좋으네.” 이어서 노래 제목도 맞추고, 따라 부르시고 온통 웃으시고, 송해는 더 젊어지셨다고 하신다. 


살아오시며 몸에 배인 부지런하신 성품과 집중력 그리고 사람을 만나고 말씀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습관에 엄마대신 내가 감사해 본다. 


돌아보니 어느 사이 엄마는 부엌으로 가셔서 마트에서 배달받은 박스를 들여다보고 계신다. 냉장 보관이 필요없는 것들이라 잠시 둔 박스다. 엄마께 점심때 꺼내놓은 부추를 다듬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안 그래도 하려고 했다며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앉으셔서 손질 보기 시작하신다. 저녁엔 엄마가 다듬어 주신 부추를 초고추장 양념에 비벼 반찬으로 맛있게 먹을 수 있겠다. 아니다. 엄마랑 같이 부추를 다듬으러  나도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2020.02.26. 수 


* 우리 엄마에게도, 여쭤본다. 엄만, 언제가 가장 행복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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